경제학 이론에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라는 것이 있다. 경제학의 대부분은,주류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저서 국부론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즉 시장기능에 의해 설명되어진다. 합리적인 소비,최적 생산,효율적 자원 배분 모두가 시장기능에 의해 달성되고,나아가 경제학에서 모든 정책의 효율성 판단 기준이 되는 '파레토 효율(Pareto efficiency)'역시 시장 기능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 마지막 부분에 가면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 '시장의 실패'이론이다. 내용의 핵심은 시장기능이 앞에서 언급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맑은 물,공기와 같이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비시장 재화의 경우 자원배분을 시장에 맡길 수 없고,또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 자체가 왜곡된 경우에도 시장은 제역할을 못하게 된다. 온실가스와 같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굴뚝산업의 경우 온실가스가 야기하는 피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시장가격 등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시장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 경제질서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시장이 제기능을 못하는 곳에서 소비 생산 자원배분이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깨끗한 물,맑은 공기를 공급하고,자원을 재활용해 쓰레기를 줄이고,토양오염을 방지하는 행위 등은 시장기능이 대신할 수 없는 정부의 고유 업무이자 의무다. 정부의 이러한 역할을 전문성을 가지고 대신하는 기관이 일부 공기업들이다. 현재 기획예산처의 주관 아래 2001년 공기업 및 산하기관 경영혁신과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평가 내용은 인력감축 자산매각 민간위탁 전자조달 등 대부분이 조직 인사 예산 사업 전자행정 운영시스템 경영효율성 고객서비스 부문으로 민간기업 평가 방식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저비용구조 확립,방만경영 쇄신,경영 투명 효율성 제고 등의 목표 설정은 일부 공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공기업의 역할은 민간기업과 크게 다르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시장의 실패를 치유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 설립 목적과 필요성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즉 시장기능에만 맡겨 놓으면 시장에서는 평가받을 수 없기에 수익성이 없어 그 역할을 담당할 민간기업은 없다. 효율성을 강조한 공기업의 민영화도 이 경우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공익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기업을 실패한 시장논리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평가 당국도 애로점은 있다.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고,자원을 재활용하는 사업 등은 분명 사회의 후생수준과 복지 수준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지만,거래되는 시장과 가격이 없기에 수치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산출물들을 화폐가치로 평가해 경영 및 예산 효율성에 반영하기가 여의치 않다. 그런데 경제학계에서는 최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비시장적 재화를 화폐 단위로 표시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방법들을 많이 개발했다. 이 중에서 특히 과거에는 자유재로 여겨졌던 환경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들은 보편화 수준에 이르렀다. 공기업 평가 방식은 새로운 추세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단순한 재무제표상의 경영 효율화만 가지고 평가해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민간기업과 유사한 산출물을 생산하는 공기업은 기존의 평가 방식으로 평가가 가능하지만,공익적 산출물을 생산하는 기업의 평가 방식은 비시장적 요소의 평가가 중요한 항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즉 시장에서는 평가받지 못하는 '국민 후생 수준의 증가분을 반영하는'새로운 평가 방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시장재를 산출하는 공기업과 비시장적 산출물을 생산하는 공기업을 나누어 평가 방법을 달리하는 공기업 평가에 이중 잣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sjkwak@korea.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