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과 여기서 지원받은 부실기업 등의 전 대주주·임원 등 5천여명이 7조1천5백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은닉하거나 해외로 빼돌렸다. 그런데도 나라 경제에 아무런 경고등이 켜지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가는 사태를 '최악'이라고 한다면,이번 감사원의 조사와 발표는 적어도 '사후적 감시시스템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러한 공적자금 운용에 도덕적 해이없이 높은 회수율과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전망된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접한 사실들은 '우리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나'하는 실망감을 강하게 몰고 온다. 이제 앞으로 해야 할 과제는 공적자금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과,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사건이 검찰 조사를 하든,국회가 국정조사를 하든 제대로 진행돼 실태가 밝혀지길 바라고 있다.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처벌을 무겁게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기회비용을 크게 하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잘하는 쪽에 상을 주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때의 '편익을 크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가지 모두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지난 1980년대 미국은 '저축대부조합' 처리 문제로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민·형사상의 책임을 엄중히 물었다. 우리도 부실기관 임직원들의 파렴치한 혐의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서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비리는 정치권과 권력실세를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희생양을 골라내고,'공무원 기강확립'등 실제 기강확립이 필요한 집단을 제외한 캠페인이 나오면서 수사가 끝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비슷한 레퍼토리로 진행된다면 국민적 불신을 면치 못할 것이다. 중국은 시장경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고위층의 부정부패 비리에 최고 사형으로까지 다스리고 있다. 이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나쁜 기억을 잊고 용서하려 하는 우리네 민족적 정서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혐의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의 법대로 공정히 처리하는 것조차 몸을 사리는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이 밖에 공적자금의 조성 운용 감시 등의 기술적 측면에 철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공적자금을 누가 어떻게 쓰는 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상시 감독하기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고,또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만족스러운 도덕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경제주체의 행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공적자금 회수 실적이 높거나,이에 기여한 기업과 금융기관 관계자들,그리고 관련기관 실무담당자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선 실명으로 대서특필,개인적 명예와 위상을 정책적인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높여 주었으면 한다.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앞에서 언급한 '상을 준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분위기 변화가 예상된다. 부실기관들은 당연히 국민앞에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공적자금을 잘 운용해야 하지만,이 '당연한'것에 뭔가 획기적인 유인이 필요하다. 또 제대로 된 국가관 사회관 미래관을 갖고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보이지 않는 다수'에 대한 박수와 전폭적 지지,그리고 이들에 대한 '실명제'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잘못되면 문책이 따르지만,잘되면 그에 따른 칭찬이나 보상이 거의 없는 '권위적인 사회'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범죄든,칭찬 받을 일이든 '익명성'으로 인해 공적자금이 공짜돈이 되기 쉬운 채널은 이 기회에 확실하게 차단했으면 한다. 선진국 국민들이 목에 힘주고 사는 것은 비단 경제적 여유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주체와 시스템의 도덕성·투명성면에서 개발도상국에 비해 우위를 가진 결과가 경제력으로 실현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ljongeun@sejong.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