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위넘은 증권사 약정고 올리기 경쟁 ] 증권업계에서 약정고는 일종의 "마약"이다. 주식 매매를 통해 발생하는 약정 수수료가 증권사의 최대 수입원이자 영업 직원들의 출세를 좌우하는 만큼 증권맨들은 약정고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되고 있는 금융분쟁의 대부분은 약정고 경쟁에서 비롯되는 일임매매나 임의매매에 관련된 것들이다.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증권사들이 고객 수익률은 뒷전이고 자기들의 이익만 불리기 위해 과당매매를 유도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증권감독국의 한 관계자는 "약정고 폐해는 해당 증권사 뿐만 아니라 증시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약정고를 높힌 증권사는 결국 고객들의 외면을 받아 몇배의 손실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약정고 폐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약정 수수료가 증권사 전체 수수료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수익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국 증권사의 약정 수수료 비중은 투자은행 업무등이 발달한 외국 유명 증권사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직원들에게 성과급이라는 당근을 내걸어 약정 경쟁을 부추기는 한편으로 실적이 부진한 영업직원은 퇴사를 강요하거나 한직으로 보내는 영업 시스템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D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경쟁구도에서는 하루에도 고객의 계좌에서 몇번씩 회전매매하는 초단타밖에 성공할 길이 없다"며 "신입사원때부터 고객들을 단타로 유도하는 방법을 교육받는 것이 관행"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같은 국내 증시 문화에도 최근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황영기 사장 취임이후 약정 경쟁에서 탈피해 "정도(正道)영업"을 기치로 내건 삼성증권이 좋은 예다. 황 사장은 우선 인센티브 제도를 바꾸지 않는한 구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직원 평가시스템을 바꿨다. 약정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얼마나 수익률을 안겨줬느냐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직원용 PC에서 지점별,개인별 약정 순위를 실시간으로 나타내주는 코너를 없애 버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직원들에게 과거 약정경쟁에서 저지른 일임매매등을 자진신고토록 했다. 일선 영업점장들에게는 약정고보다는 손실률이 높은 고객 관리에 주력하도록 했다. 삼성증권은 약정고 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인베스트먼트 뱅킹(투자은행)업무와 자산관리 업무등을 강화하는등 수익구조를 선진 구조로 탈바꿈시킬 방침이다. 황 사장은 "외국 증권사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약정고에 연연해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고객수익률을 최우선으로 할 때 증권사도 살고 고객도 사는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 ------------------------------------------------------------------------------ [ K투자상담사 사례 ] 최근 임의매매를 통해 고객돈 20억원을 날려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D증권 K투자상담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K씨는 지난 98년부터 큰손 고객 E씨의 돈 21억원을 관리하다 E씨의 허락없이 주식을 거래하는 임의매매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K씨가 임의매매의 유혹에 빠져 든 이유 역시 대부분의 투자상담사나 영업점 직원들이 그러는 것처럼 고객에게 어느 정도 수익률을 올려주면서 자신은 잦은 매매를 통해 약정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잇따른 투자 실패로 원금을 까먹기 시작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K씨의 매매횟수는 더욱 빈번해졌다. 임의매매 횟수는 3년여에 걸쳐 무려 4천4백50회나 됐다. 그 결과 21억원의 원금은 5천만원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여기에서 발생한 수수료는 무려 10억원을 웃돌았다. 회사측으로부터는 엄청난 약정고 실적을 올리는 "우수 사원"의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