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고조됐던 미국의 전쟁 분위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청사가 공중피랍된 민간여객기에 들이받혀 처참한 테러 피해가 발생하자 건국 이래 첫 본토 피격에 따른 자존심 손상까지 겹쳐 즉각 응징에 나설 듯했으나 점차 신중론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1세기의 첫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내비치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전세계 미군에게 "여러분도 며칠안에 영웅 반열에 오를 것"이라며 "공격은 사전경고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선언할 때만 해도 특수부대 등 지상군 투입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 수뇌부는 이후에도 특수부대 전투 태세 돌입 명령, 예비군 동원, 전시내각구성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고 의회도 테러 관련 추경 예산과 병력 동원을 만장일치로 승인하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으나 실제 행동까지는 아직도 짚어야 할 수순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오사마 빈 라덴이 주모자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제1의 용의자라는 거듭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공격의 명분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빈 라덴이 은거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내륙국으로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했던걸프전 때의 이라크와는 크게 다르다는 지정학적 위치도 쉽지 않은 장애물이다. 파키스탄, 이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인접국 허락 없이는 가장 중요한병참기지 확보와 전투기 영공 통과는 커녕 미사일 한 방도 쏘기 어려운 상황으로 미국이 파키스탄 및 러시아와의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월남전의 악몽을 잊을 리 없는 미국이 보복 공격을 위한 국제 연대 형성에 공들이는 것은 당연하며 테러범과 그 비호 세력을 종교와 분리시켜 `회교 문명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도 전쟁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외교 전선'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사흘간의 말미도 응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이라기보다는 외교적 명분을 하나 더 쌓는 수순에 다름 아니며 만의 하나라도 아프간이 `수용할만한' 조건과 함께 빈 라덴을 내놓는다면 미국으로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최상의 결과가 될 것이다. 토마호크 미사일 몇 발 쏘는 것도 아니고 지상군 투입에 이은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사 완결과 외교 전선 마무리에 이어 최상의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지상기지를 확보한 후 실제 행동에 나서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꽤 걸릴 전망이다. 다만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국민 감정을 무시할 수도 없고 머잖아 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걸프전 때처럼 몇 달씩 시간을 끌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도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 특파원 yd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