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우 < 우리기술 사장 dwkim@wooritg.com > 남한과 북한의 격차를 얘기할 때면 컬러TV와 세종문화회관을 떠올린다. 3공 시절 그 유명한 대통령의 밀사가 북한을 첫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는 없었고 북에는 있었던 것들이다. 그 밀사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남북한의 생활 수준에 차이는 거의 없었다. 차라리 우리가 뒤졌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올 6월 평양을 방문했다.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밤이 되자 가로등조차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그 거리를 영상에 담는데 차가 너무 없다며 안내원이 촬영 제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어릴 적 배웠던 늑대로 묘사된 북한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영국 BBC방송의 평양발 기사를 보면 '늑대'의 미몽에서 깨어나기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8·15 경축행사가 끝나고 남한인사들이 평양을 떠나자마자 평양거리의 가로등이 다시 꺼졌으며,날지도 못하는 구 소련 제트여객기들을 전시용으로 평양공항에 진열해 놓았다는 게 보도의 요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실보다 외관에 신경쓴다고 비꼰 것이다. 손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주인의 심정이다. 우리도 한때 외국 국가원수가 방문하기 직전에 서울을 칠한 적이 있었다. BBC의 경우 영국여왕이 방문하겠다고 알려오면 어떻게 나올까. "올테면 오라"며 평상심으로 점잔을 피우고 있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를 맡았던 북한 안내원들은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솔직히 시인했고 남한이 더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BBC 기자가 평양의 가로등 불빛과 제트여객기 때문에 북한을 보는 우리의 평가가 달라질 것을 걱정해 그 같은 보도를 한 것 같지는 않다. 며칠 전 내한 강연한 미국의 잘 알려진 역사학자는 "미국은 자국에 충격을 줄 어떤 한반도의 변화도 원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BBC의 이번 보도가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의 시각을 대변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