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출발이 좋다. 최근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압승은 일본이 앞으로 '정치적 안정'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승리는 고이즈미의 개인적인 인기에 힘입은 것이다. 고이즈미는 이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처럼 장기집권을 향한 튼튼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큼 강력한 정치적 힘을 결집했다. 자민당 내에서 고이즈미가 내놓는 각종 경제대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다. 자민당 의원들은 여전히 이전의 낡은 방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이 2류나 3류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이같은 광범위한 인식을 정치적인 결집으로 유도해낸 인물이다. 고이즈미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경제적인 문제다. 세계 2대 경제대국의 지도자로서 고이즈미는 자신의 정치적인 역량을 미래지향적이고 투명한 경제전략을 짜내는 데 쏟아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고이즈미는 기업 은행 등 재계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그의 경제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면 일본은 또다시 벼랑끝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고이즈미식 마술'을 '고이즈미노믹스'로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지금뿐이다. 고이즈미노믹스의 핵심은 바로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이다. 고이즈미의 정치적인 힘은 대중적 인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가장 강력한 동반자 역시 국민이다. 그가 추진하는 경제개혁의 성패는 일본 소비자들의 지출을 얼마나 유도해내느냐에 달려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정부가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먼저 일본경제를 직·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카르텔을 깨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통신 전기 등 공공부문의 규제완화가 필수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금감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일본경제의 가장 큰 현안은 어떻게 소비심리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적극적인 규제개혁과 물가하락 유도가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이다. 고이즈미는 취임 당시부터 정부기관인 주택금융공사의 민영화를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이 거대기업은 일본의 '금융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곳. 시장금리보다 저렴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알선해주며 우편저축 예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전체 모기지 시장의 약 3분의1을 점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기지 시장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고이즈미의 규제완화 정책은 일반 시중은행에 15%까지 운영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이즈미식 경제개혁은 은행들에 새로운 사업기회와 수익원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야말로 부실채권 처리에 대한 부질없는 논쟁보다 훨씬 중요하다. 만약 주택금융공사의 민영화가 예정대로 진척된다면 일본 은행들 역시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수용할 것이다. 고이즈미노믹스를 평가할 만한 또다른 수단은 고이즈미가 취하는 정책이다. 과거에는 경기후퇴 조짐이 조금만 보여도 대규모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장기불황을 막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이같은 전철을 따르지 않고 있다. 추경예산이 결국 일본 소비자들의 지갑을 동여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는 내년도 국채발행 규모를 30조엔으로 동결할 계획이다. 30조엔이면 일본의 한 가정이 매일 2천엔씩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일본정부가 내년에 국채회수에 나서게 되면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결국 떨어지고 만다. 게다가 공채 가격도 낮아질 것 같지 않다. 시중금리가 이미 최저수준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는 재정적자 확대가 결국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뿐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올 가을께 2조∼3조엔 정도의 추경예산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징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정책대로라면 올해 안에 대규모 지출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은 없을 것이다. 고이즈미 앞에는 수많은 도전이 놓여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호는 올바른 방향으로 순항중이다. 고이즈미노믹스가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기만 한다면 일본경제의 향후 전망은 더욱 밝다. 고이즈미가 개혁에 박차를 가할수록 일본 국민들의 고통지수는 줄어들 것이다. 디플레이션 방지에는 구매력을 높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를 위해선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개입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지금이 아니면 두번의 기회는 없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최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Coming Soon:Koizumi-nomics'라는 사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