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대신동의 도솔산 내원정사.부산 구덕운동장 뒷편 오르막길로 불과 5분 거리지만 사찰은 숲속에 묻혀 벌써 "출세간(出世間)"이다. 맑은 바람에 숲의 향기가 실려오는 내원정사 산방에서 조실인 동춘(東椿.69.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스님을 만났다.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해온 동춘 스님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내원정사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락을 위해 잠시 들를 뿐 늘 물처럼 구름처럼 자유롭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 그러나 거기서 터져나오는 법문은 더없이 명쾌하고 활연(活然)하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연 따라 사는 것이지요. 머무르면 집착이 생기고 얽매이게 됩니다" -평생을 쉼없이 수행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인간은 왜 공부하고 수행해야 하는 걸까요.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 그릇을 키울 수 없어요. 그러자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지혜롭지 못하면 그릇을 키울 수 없어요"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까. "지혜는 나를 버림으로써 생깁니다. 그러자면 나를 돌아보고 내 허물을 알아야지요. 남을 위하는 게 곧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보면 '내게도 허물이 있겠지'라고 생각해보세요" -나를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처럼 쉽지 않을텐데요.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야지요.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자기를 내세우게 되고 싸우는 것입니다. 여·야 간의 정쟁도 자기 입장에서만 주장하다보니 생기는 것이지요. 집착하면 우물안 개구리밖에 안되지만 집착에서 벗어나면 삼천대천세계가 다 보여요. 주식투자하는 사람들도 배당보다는 욕심 때문에 팔고 사고 하다가 손해보고 또 더 벌려고 집착하다 망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쪽과 나쁜 쪽이 있으니 선악을 가려야 하지 않을까요. "본래 악이 없이는 선도 없고 선이 없으면 악도 없습니다. 선악이 모두 불법(佛法)이요 스승이지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잘 들으면 보약이고 잘못 들으면 독이 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기보다 각자가 그것을 바로 보고 바로 듣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지요" -스님은 수행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수행이란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얻는 게 있다면 집착하게 되겠지요. 불교는 버리는 겁니다. 그래야 새 것이 들어오지요. 왜 창고에 헌 것을 쌓아둡니까" -그렇다면 스님은 얼마나 버렸습니까. 다 버리셨나요. "버릴 게 있어야 버리지요. 버린다,갖는다 하는 생각도 하지 말고 인연따라 좋은 일을 짓는 것 뿐입니다. 나를 버리면서 '버린다'고 하는 생각마저 없을 때 큰 그릇을 가진 대장부가 됩니다" 일견 모순된 듯하지만 노장의 경지가 엿보이는 답이다. 철저히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를 버리되 버린다는 생각조차 갖지 말라는 얘기다. 동춘 스님은 "한 생각을 돌이켜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 지혜롭게 된다"고 했다. 겸손하고 양보하라는 뜻이다. -스님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참 편안해지겠군요.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 같은데요. "스트레스도 집착에서 옵니다. 누가 내게 서운하게 하면 내가 전생에 잘못한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모든 것은 자기 생각에 달렸어요. 남이 내게 나쁘게 해도 좋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지요" -그래도 바쁘게 살다보면 그런 여유를 갖기 힘든 것 같습니다. "왜 바쁘게 삽니까. 욕심을 채우고 나를 내세우자니 바쁘지 지혜롭게 정리하면 바쁠 일이 없어요" -요즘엔 일반인들도 수행에 관심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행법에 관한 논란도 있구요.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므로 수행은 자기근기에 맞춰 하면 됩니다. 쓸데 없는 인연은 끊고 속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집착을 버리면 돼요. 선이 제일 발달된 방법이지만 마음가짐만 바로 하면 수행방법은 기도든 관법이든 문제가 안돼요" -수행을 하면 생사의 문제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죽는 것을 겁낼 이유가 없습니다. 인연따라 살다 가는 것이지요. 밤에 모르는 길을 간다면 무섭지만 아는 길을 간다면 걱정없이 가지 않습니까. 나고 죽는 것은 헌 옷 헌 기계를 버리고 바꾸는 것입니다. 다만 돈이나 그 무엇으로도 안 가게 할 수는 없으니 괴롭지요.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겁니다" 수행은 젊어서 해야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긴다고 노장은 강조했다. 몇 차례 죽을 고비와 속퇴(환속)의 유혹도 견뎌냈다는 노장은 젊을 때 수행담을 들려달라고 하자 "말해봐야 자랑밖에 안된다"며 입을 다물었다. 노장은 "나를 버리라.내 허물을 먼저 보라.집착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산=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