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 계보를 잇는 중남미 두 여성작가의 장편소설 2권이 번역출간됐다.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51)의 "사랑의 법칙"과 페루 작가 이사벨 아옌데(59)의 "운명의 딸". 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중남미권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라틴문학의 대표작가들이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두 작품은 침탈당한 중남미 역사를 고발한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글쓰기양식과 내용의 전개방식 등에선 사뭇 다르다. 에스키벨의 '사랑의 법칙'은 음악과 그림을 문학에 접목한 본격 멀티미디어 소설. 푸치니의 오페라 아리아 등을 담은 CD와 스페인의 예술만화가 미켈란소 프라도가 그린 원색 삽화가 작품의 일부로 기능한다. 음악은 작중인물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버튼'역할을 하며 삽화들은 기억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이미지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사랑의 법칙'의 내용은 다분히 환상적이다. 서기 2200년 멕시코에 거주하는 여성 아수세나는 결혼직후 실종된 남편 로드리고를 찾아 '전생여행'을 떠난다. 이별의 원인인 '전생의 카르마(업보)'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아수세나는 전생에 악명높은 살인마였고 스페인 점령기에는 피정복 인디오의 원한으로 갓난아기 때 살해당한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작중인물들을 지배하는 사상은 연기론이다. 한 사람이 증오심을 간직한 채 숨지면 자연의 균형이 깨지며 증오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윤회를 거듭한 뒤에야 우주의 질서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법칙'이 7백년 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오가는 공상과학 멜로물이라면 '운명의 딸'은 1850년대 '골드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라틴계 이민자의 억압과 착취를 담은 역사소설이다. 애인을 찾아 나선 엘리사의 눈에 비친 캘리포니아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자 라틴계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의 본산이다. 그곳은 가부장질서가 여성을 억압하는 그의 고향 칠레와 다름없다. 그는 '오디세이의 여정' 끝에 애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찾는다. 그의 동반자 중국인 타오는 엘리사가 복수심에 불탈 때 현재의 심적 고통이 '전생의 업'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복수는 끝없는 피의 귀결을 불러올 뿐이란 말과 함께. 타오는 폭력적인 남성문화와 이로 억압받는 여성문화를 화해시키는 매개체다. 이로써 이 작품은 차별주의적인 기존 페미니즘과 달리 용서와 화해에 바탕을 둔 '박애주의적 페미니즘' 경향을 띤다. 두 작품이 마르케스의 계보를 잇고 있긴 하지만 정통 '마술적 사실주의'에선 이탈해 있다. '사랑의 법칙'은 미래세계의 과학장치를 통해 시공의 경계를 허물어 뜨렸고 '운명의 딸'에선 타오가 죽은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만 실재와 환상의 벽이 사라질 뿐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를 '신세대 마술적 사실주의'로 부르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