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치 '명분'과 '실리'..홍성태 <한양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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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총회에서 한국김치가 국제식품 규격으로 승인 받음에 따라 일본의 '기무치'를 누르고 명실공히 '원조'임을 확인했다.
우리 전통식품이 세계적 식품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셈이다.
우리나라가 김치의 종주국임을 알리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이제 원조가 누구인가보다는 누가 이를 성공적으로 상품화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술적으로 우수하다고 마케팅 면에서도 반드시 우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개발한 신제품이 경쟁자의 손에 넘어가 꽃피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상품화에 특히 능한 것이 일본기업들이다.
소니는 텔레비전을 처음 만든 회사가 아니지만,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백자나 청자와 같은 우수한 도자기를 만든 나라임을 자랑하지만,현재는 인쇄술로도 인정받는 제품은 없다.
이번 코덱스 인증의 핵심은 '기무치'가 단순한 겉절이에 불과한데 반해 '김치'는 젖산발효 식품임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젖산발효라는 바로 그 특징이 실제로는 규격화를 대단히 어렵게 한다.
생산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유통과정 중에서도,심지어 구매후 보관상태에 따라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김치다.
일본기업들의 김치 연구수준은 우리네를 훨씬 능가한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발효시키지만,그들은 발효의 과학화로 일정수준까지 발효시킨 뒤 발효를 멈추게 하는 등 발효 상태를 조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또 이번에 설정된 코덱스 규정은 젖산의 최저수준을 규정하지 않아 일본 기업들에 유리하게 되었다.
외국인의 식(食)습관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밥과 반찬을 따로 먹는다.
반찬을 다 먹고,나중에 밥만 먹는 셈이다.
밥을 먹기 위한 반찬이 아니라,밥과 반찬이 독립적인 음식이다.
우리는 비빔밥이나 섞어찌개처럼 복합된 맛의 조화를 즐기지만,그네들은 하나 하나의 맛 자체를 음미하려 한다.
외국의 한국식당에 가보면 김치를 마치 샐러드처럼 한 사발 갖다 놓고,그것만 먹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러므로 그들의 식생활과 입맛에 맞출 것인지,아니면 한국김치의 맛을 교육시켜 나갈 것인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카레라이스를 즐기는 일본에서 전통 인도식 카레는 안 팔린다.
국제인증을 받았으니까 외국에서 무조건 잘 팔릴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김치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발효의 새콤한 맛을 부패의 쉰 맛으로 인식한다.
국제 식품규격의 김치라고는 하지만,김치 냄새를 대폭 줄여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일본기업들은 벌써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포장지를 개발해 놓은 상태다.
인식상의 차이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 김치를 먹는 외국인은 아직 극소수이며 한국김치가 건강(발효식품)과 미용(고추의 켑사이신)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건강이나 미용 등과 같이 분석적 이유로 인한 소비에는 한계가 있다.
김치는 역시 곰탕이나 불고기처럼 한국 음식과 함께 먹어야 맛있는 식품이다.
한국음식이 그들의 인식 속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하는 외국 음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이미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일본에 진출한 많은 영세한 한국 김치회사들은 일본 유통상의 농간 때문에 경쟁적으로 저가격 정책을 쓰고 있다.
일본의 경우 마루코시의 보쌈김치는 7백g에 1천2백엔(g당 1.71엔)에 팔리며,최고급 김치는 2천엔에 이르고 있다.
반면 4백g 짜리 한국김치는 정가가 3백98엔이지만 보통 2백98엔에 할인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악한 포장의 싸구려 김치가 자칫 한국김치의 표본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저가격이 단기적으로는 김치를 팔지 모르지만,한국김치 전반에 대한 이미지를 망가뜨리고 있다.
어렵게 획득한 김치의 국제표준을 우리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hongst@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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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