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는 동네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곤 한다. 맨해튼의 상징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근처 32가쪽의 이름은 코리아웨이. 서울의 이태원보다도 더 많은 한글 간판이 눈에 띄는 한인 밀집지역이다. 식당 호텔 은행에서부터 미용실 컴퓨터방까지 온통 한글이다. 코리아웨이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패션스트리트가 나온다. 연간 1백40억달러의 섬유 의류제품이 거래되고 5천여개의 생산업체와 패션 쇼룸이 있는 섬유와 패션의 중심지. 때문에 뉴욕은 금융 예술뿐 아니라 세계패션을 선도하는 '패션의 수도'란 애칭까지 붙어 있다. 한국에서 수출되는 섬유 의류제품도 대부분 이곳을 경유해 미 전역으로 흩어진다. 섬유강국을 자랑하던 한국인들이 왜 이 지역에서 타운을 형성했는지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 요즘 이곳 한국업체들 사이에 '사상 최악의 불경기'란 아우성이 쏟아진다. 미국의 경기부진으로 수입상들이 한국제품의 가격을 깎거나 통상 90일이던 신용결제기일을 1백80일에서 심지어 2백70일까지 늦추는등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탓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 국내경기가 어려워지자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한국기업들 간의 과당경쟁이다. 지속적인 할인으로 '할인가격'은 이제 '정상가격'이 돼버렸다. 일부에선 우선 물량을 따내기 위해 '덤핑가격'까지 제시하곤 한다. 조금 있으면 원가보다 낮은 '덤핑가격'이 정상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올 정도다. 근래들어 한국산 섬유제품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20%정도 낮았던 중국산과 비슷한 값에 거래된다. 미 상무부 통계도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1분기중 우리나라 의류제품의 대미 수출물량은 1억2천5백80만㎡. 전년동기보다 4%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금액은 4억8천2백만달러로 오히려 1.6% 감소했다. 경쟁대상인 중국 멕시코 등이 물량과 금액 모두 비슷한 비율로 늘어나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적어도 세계 섬유업계에선 품질의 상징이었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맨해튼에선 이제 그저 그런 싸구려 제품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