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 창설에 큰 공헌을 했다.

당시 나는 연덕춘 박명출 선배프로들과 ''한국프로골프협회''(가칭.KPGA)창설을 위해 여러차례 얘기를 나누곤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김 부장을 레슨하고 있던 홍덕산 서울CC 헤드프로와 나는 마침내 김 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키로 했다.

하루는 김 부장이 서울CC에서 라운드를 마치고 골프장 앞 정자에서 쉬고 있을 때 나와 홍덕산 프로가 그를 찾아갔다.

김종필 현 자민련 명예총재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우리는 "프로골프협회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김 부장은 "뭐?"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아있던 당시 공화당의장 김종필씨가 거들어 주었다.

김종필씨는 "이거 봐,김 부장.그거 하나 해줘라.당신이 해줘야지,누가 해주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부장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는 "상세한 내용은 홍덕산 프로가 문학림 비서실장을 통해 올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홍덕산 프로는 연덕춘 박명출 선배와 얘기를 나눈 뒤 초안을 만들어서 비서실장을 통해 김 부장에게 전달했다.

김 부장은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골프를 치는 기업인 15∼20명을 추려내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당시 허정구 삼양통상 사장,정영호 대명광업 사장,조봉구 삼호개발 사장,김창원 신진자동차 사장,박영준 진흥기업 사장,박건석 미륭상사 사장,박승찬 금성사 전무 등 21명이 후원회원으로 선정됐다.

김 부장은 이들을 현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 옆 중국식당 ''아사원''으로 점심식사 초청을 했다.

그 자리에는 연덕춘 박명출 배용산 김복만 홍덕산 이일안 김성윤 한성재 필자 등 프로 19명도 참석했다.

김 부장은 식사를 마치고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신 것은 여러분들의 힘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비서실장이 내용을 설명하시오"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은 KPGA 창설 초안을 낭독했고 연덕춘 프로가 필요한 사항을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그 자리에서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과 기부액수를 써냈다.

1인당 1백만원씩 써 2천만원 정도가 모금됐다.

한국프로골프협회가 막강한 권세를 갖고 있던 김 부장의 힘을 빌려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