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규제하려는 제도로는 기업을 성장시킬 수 없다''

오는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글로벌 혁신 기업가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사이먼 존슨 MIT 경영대학원 교수(기업전략 컨설턴트)가 늘 강조하는 얘기다.

그는 "국내 시장에서 신나게 뛰고 해외 시장으로 마음껏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글로벌 혁신을 이뤄내는 기업가 정신을 탄생시킨다"며 한국의 기업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경쟁력 막는 한국판 국제기준 =세계 1,2위의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가 자동차를 팔아 기업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주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최근 세미나에서 "GM과 포드의 수익구조를 볼 때 30% 이상이 금융 부문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어떤가.

전체 순이익 가운데 금융 부문의 비중은 5.7%뿐.

한마디로 수익구조 자체가 글로벌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자동차는 ''우물 안 개구리''라서 금융업을 안하는가.

그렇지 않다.

구조적으로 금융사업을 할 수 없어서다.

숙원 사업인 신용카드업 진출은 출자총액제한과 부채비율 2백% 규정에 발목이 잡혀 있다.

신규 사업에 진출하기는 커녕 현재 계열사 출자한도분을 내년 3월말까지 줄여야 할 처지다.

주우진 교수는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관련 사업 다각화에 대해서는 출자총액규제상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울 좋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느라 헉헉거리기는 해운업계도 마찬가지다.

해운업은 경기가 좋으면 새로운 배를 주문해야 한다.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부채비율 2백% ''족쇄''가 채워져 있어 업황이 좋아져도 마음놓고 사업을 못해 울화병만 도지고 있다.

한때 수출한국의 전진부대였던 종합상사도 부채비율 2백% 한도에 묶여 사실상 ''무장해제''됐다.

LG상사 K부장은 "해외에서 대규모 플랜트를 따올 경우 대부분 수출대금을 나중에 나눠받는 연불수출 형태다.

처음에 수출 제품을 사기 위해 금융을 일으키면 이는 모두 부채로 잡히니 손발 묶어놓고 영업하라는 얘기"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말로는 수출 확대를 외치는 정부가 한쪽에서는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례다.

◇ 처방의 유연성 부족 =외환위기 직후 IMF 관리체제 때만 해도 경제 주권을 사실상 빼앗긴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앞세운 구제금융 제공자의 요구에 따라야만 했다.

부실 금융회사 처리와 기업의 부채비율 2백% 맞추기 및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등이 강행됐다.

선진국에선 수십년 수백년에 걸쳐 도달한 국제 기준을 하루아침에 맞추다 보니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에 ''부실 딱지''가 붙여졌다.

자유기업원 이형만 부원장은 "대기업 규제는 여건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며 "부채비율 2백% 준수와 같은 IMF사태 초기의 ''비상 구급약''을 정상 경제로 돌아온 지금에까지 처방하려는 것은 마치 회복기 환자에게 중환자의 약을 먹이려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구학.김용준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