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

예쁜 여자가 차에 부딪히면 멀리서 지나가던 남자들까지 뛰어와 괜찮냐고 묻는다.

못생긴 여자가 부딪히면 우선 차가 괜찮은지를 살핀다.

또있다.

예쁜 여자가 장학금을 타면 "공부까지 잘한다"며 칭송이 쏟아진다.

못생긴 여자가 타면 "공부라도 잘 해야지"라며 한마디씩 한다.

여성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풍조를 갈파하는 블랙유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연해온 미모제일주의는 여성을 성적 대상물이나 상품으로 여기는 그릇된 사회적 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근래들어 여기에 반기를 든 "안티 미인대회"같은 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남자들이 생겨났을만큼 시대가 달라지곤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용모를 따지는 남성들의 행태가 엄존한다.

산드라 블록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미스 에이전트"(원제 Miss Congeniality.24일 개봉)는 바로 여성을 "못생김"과 "예쁨"으로 이분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괄괄하기 그지없는 선머슴같은 여자 FBI요원(산드라 블록)이 테러가 예고된 미스USA대회에 위장 출전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다.

지능적인 테러범을 내세운 시작은 짐짓 심각하다.

하지만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나 드러난 진상은 아동용 추리만화를 보는것 만큼이나 유치하다.

영화의 관심은 사실 다른데 있다.

어린시절부터 남자들이 눈길한번 주지 않던 왈가닥이 귀신같은 화장술과 스파르타식 훈련에 힘입어 최고의 미녀로 변신한다는데서 웃음을 뽑아낸다는 전략이다.

노상 부시시한 머리에 어기적대며 걷고,코를 그렁거리며 웃던 여자가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녀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은 장관이다.

"미인"이 된 후에도 소동은 그치지 않는다.

하늘하늘한 드레스에 뾰족구두를 신고 우아하게 걷다가 넘어지거나,미인대회에서 호신술을 장기로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는 다양한 관객들을 만족시키려 애썼다.

여주인공이 남자를 한주먹에 때려 뉘는 모습은 "강한여성"을 선망하는 여성관객에게 통쾌함을 선사하고,털털한 몸가짐은 조신하지 못한 여성들의 "동류의식"을 자극해 호감을 얻어낸다.

팔등신 미녀로 거듭난 주인공의 변신은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남성관객에게는 섹시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자갈기처럼 부풀린 머리에 천편일률적인 미소로 무장한 미인들이 무작정 "세계평화"를 외쳐대는 광경이나 외모에 따라 1백80도로 달라지는 남자들을 조롱하면서 허울에 집착하는 세태를 가볍게 건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반(反)미인대회주의자였던 주인공이 출전자들과 연대하고 우정을 나눈후 "새로운 세상"을 포용한다는 안전한 결론을 도출하거나 주인공이 아름다워진후 사랑을 얻는다는 설정은 비판의 여지도 꽤 있다.

이런 태도에 못마땅한 시선만 접고본다면 영화는 꽤 유쾌하다.

산드라 블록의 개구장이같은 매력이 각별하고 느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게이 뷰티 컨설턴트"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의 연기도 훌륭하다.

줄리아 로버츠의 연인이라는 벤자민 브랫(에릭역)을 자세히 뜯어볼 기회이기도 하다.

다이어트의 괴로움이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재치있는 농담들도 재미나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