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야구스타 백인천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야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야구를 해서 돈을 버는 겁니다"

언뜻 듣기엔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속뜻은 그렇지가 않다.

백 선수 말은 "궁극적인 목표는 돈이 아니라 야구다. 그리고 목표로 삼는 그 야구를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이 벌린다"는 것이다.

결국 운동이 업인 프로 선수지만 "업"보다 운동 "그 자체"가 중심이라는 그런 뜻이다.

사실 나도 투자라는 걸 처음 배울 때 미국 스승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다.

돈이 필요하다든가(need money) 돈을 벌고 싶다든가(want money) 하는 게 투자의 동기가 돼선 안 된다.

그리고 투자는 게임으로,돈은 그 게임의 칩(chip)으로 여겨야 된다.

"돈 생각"이 들면 감정이 개입돼 꼭 지켜야 할 게임의 룰(rule)들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투자는 올바른 룰들을 잘 지키는 끝없는 훈련 과정이다.

주식을 하는 우리 투자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명언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런 철학을 가진 투자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대부분이 "그래, 나도 돈 한 번 벌어 보자" 하고 뛰어든다.

돈도 시시한 돈이 아니고 큰 돈이 어른거리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홈런 한 방을 노리니까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크게 헛스윙을 하고 넘어진다.

우리 클리닉이 요란한 투자기법이 아닌 올바른 투자철학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런데 소위 프로(professionals)를 자처하며 남의 돈을 맡은 이들조차 이 "돈 생각" 때문에 가끔 실족한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건 나무라서 될 일이 아니고 낌새가 보일 때 빠져 나오는 게 상책이다.

실제로 그걸 감지하는 요령을 나도 미국 회사 시절 내 보스 한테 배웠다.

그 때 우리 업무는 선물 펀드를 조성해 최고 실력자들에게 나누어 맡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그들의 투자외적 상황을 체크하는 소위 질적인 분석(qualitative analysis)이었다.

용어가 근사해서 그렇지 내 보스의 관심은 딱 한 가지였다.

혹시 누가 "돈 욕심"에 빠지지는 않나 하는 것이었다.

오랜 경험상 그것만큼 치명적으로 그들을 망가뜨리는 독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큰 이익을 내 주면 반기기보다 오히려 불안해 한다.

혹시 성과보수(incentive fees)가 탐나서 무리한 베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럴 땐 꼭 전화를 걸어 투자 시스템이 바뀌었는지, 다른 사유가 있는지 물어 본다.

가정불화 소문이 들려도 반드시 추이를 따라가 본다.

이혼을 하게 되면 위자료가 필요하고, 그러면 분명 매매에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걸 봐도 넌지시 전화를 한다.

혹시 그 차 값 지불이 부담이 되지 않는지 떠보기 위해서다.

당시엔 무심코 지켜봤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일리 있는 발상이다.

"돈의 함정"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그 펀드 매니저들의 기본 실력은 어디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돈은 무서운 것이다.

많은 분쟁과 고뇌가 그 뿌리를 더듬어 가 보면 거의가 돈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돈으로부터 초연할 수 없고,주식은 밉상스럽게 굳이 그 초연함을 요구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몇 발짝 멀찌감치 물러서서 한 번 쳐다보자,뭔가 길이 보이는지.

시장이 그렇게 요구할 때는 우리가 모르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지 않겠는가.

김지민 < 한경머니 자문위원.현대증권 투자클리닉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