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모르던 시절,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방송국의 PD들과 회식자리에 가면 어김없이 시작되던 그들의 골프이야기.

연습장에서 볼이 잘 맞은 이야기부터 시합에서 극적으로 이긴 이야기까지….

두 시간 넘게 계속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비골퍼''인 내게는 하품만 불러왔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야 자신의 경험담이라 신나게 얘기한다고 치자.하지만 그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뭐란 말인가? 뭐가 재미있다고 저렇게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져 듣고 있는 건가?''

그런데 내가 골프를 접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 전 라운드를 하고 온 회사 동료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중요한 시합에서 더블파를 하는 바람에 전세가 기울어졌다는 이야기,그러나 18번홀에서 옆홀 페어웨이로 날려버린 볼을 멋지게 쳐내 온그린시키고,그 어려운 상황을 파로 막아 승부에서 이겼다는 장황한 이야기였다.

남의 골프 이야기인데도 어찌나 손에 땀을 내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는지….

내가 마치 그 필드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빠져들 수 있는 이것은 또 골프의 어떤 힘이란 말인가?

십수 년 골프에 빠져 있는 골프선배에게 물었다.

"골퍼들은 왜 앉으면 골프이야기만 할까요? 대체 뭘 얻고자 그렇게 열중하게 되는 걸까요?"라고.

"골프의 세계는 무림의 세계와 같지요.무협소설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검객들은 처음 만나서부터 칼싸움에 돌입하진 않아요.일단 선문답 같은 말을 주고 받은 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지요.골퍼들이 무심코 골프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지만 내면은 그뿐이 아니에요.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핸디캡을 알아보고,나와 상대가 될 사람인가도 평가하고,때로는 실력을 전수받기도 하지요"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쳤을까? 이 부분은 집에 가서 메모해 놓아야겠다.볼을 그렇게 쳐내다니 이제 더 이상 나의 라이벌이 아니구나.절대 내기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걸 떠올리지 않았던가.

내가 하품하던 시절,방송국의 그 PD들은 논검(論劍)으로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골프는 샷 대결 이전에 마인드 대결이고 말 대결이라더니….

그 말이 맞다.

고영분 moongolfsky.com 골프스카이닷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