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은 언제나 그랬듯 금리인하의 시기와 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발언에 기대를 걸었던 뉴욕증시는 실망매물을 쏟아냈다.

2월 마지막 날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2,200선 마저 깨트리며 주저앉아 2,151.83으로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55.99포인트, 2.54% 떨어졌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41.60포인트, 1.33% 하락한 10,495.28에 마감했다. 대형주 위주의 S&P 500 지수는 1,239.94를 기록, 18.00포인트, 1.43% 내렸다.

앨런 그린스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오전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보고를 통해 지난 연말 급격한 경기둔화에 대응, 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1.00% 포인트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만족할 만한 성과에서는 비켜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그의 분석은 지난 13일 상원에서의 정례 보고와 같은 줄거리를 유지한 가운데 전망은 다소 아래쪽으로 기울었다. 이에 따라 FRB는 일각에서 예상한 것처럼 당장 이번주에 비정례회의를 통해 금리인하를 단행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금리를 내리며 경기방어에 주력할 전망이다.

그린스펀은 그러나 소비자신뢰지수가 악화됐지만 주택과 자동차 등 장기적인 소비지출 의사결정에서는 그다지 취약하지 않은 모습이라며 경기둔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지난 금요일 금리인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기한 베어 스턴스의 FRB 출신 수석 이코노미스트 웨인 앤젤은 그린스펀이 경제와 증시의 취약성에 대해 자만에 빠져 있다며 비난했다.

이날 앤젤에 의해 대변된 그린스펀 비판은 그동안 절대적이었던 FRB의장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린스펀은 그동안 미국 경제의 10년 장기호황을 지휘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지난 98년 이후 나스닥은 그에 대한 믿음에 한 발을 디디고 기록적인 강세를 탔다.

''일방적인 믿음''은 그가 장기호황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지난 99년 6월 이후 금리를 높이자 오히려 나스닥지수를 끌어올렸다. "그린스펀이 경기조절은 물론 강세장도 언제까지나 지속시킬 것"이라는 심리가 널리 자리잡았다. 게다가 신경제론자들은 기술주는 성장성이 워낙 좋기 때문에 금리가 높아질 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그린스펀이 금리를 1.75%포인트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식 자산의 인플레이션, 즉 증시 버블은 더욱 부풀려졌다.

이제 나스닥을 띄워올렸던 그린스펀이라는 ''심리적인 버팀목''이 힘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거래소에 비해 높은 나스닥 종목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날 경제지표로는 지난 4/4분기 경제성장률이 잠정치 1.4%에 비해 낮은 1.1%로 확정 발표되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가고 있음을 새삼 확인케했다. 지난 분기 경제성장률은 5년 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술주는 네트워크, 컴퓨터, 통신, 인터넷 등 예외 없이 약세였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92% 떨어졌다. 기술주 외에도 금융, 에너지, 유틸리티, 유통 등 대부분 업종이 하락세에 휩쓸렸다. 건강의료와 소비재 등 일부 업종에서만 소폭 상승세가 나타났다.

한경닷컴 백우진기자 chu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