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 이화여대 예방의학 교수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가운데 어렵게 출범한 의약분업제도가 실시 7개월째를 맞고 있으나 가시밭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엔 의약분업 대상에서 주사제를 제외시키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앞으로 주사제 문제 외에도 약품분류 문제에서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은 의약분업 시작부터 실행여부를 두고 많은 진통을 겪은 탓에,제도의 내실을 다지는 과제의 해결은 앞으로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띄워진 배라면'' 지금부터라도 의약분업이 적절한 방향으로 항진해나갈 수 있도록 정책내용을 가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고 하더라도 개혁정책이 운용될 수 있는 정책여건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 수준으로 ''정책의 눈높이''를 맞출 필요가 있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라는 전문직종의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한 ''비용지출이 불가피한 정책''이다.

문제는 현재 의료보험 재정이 의약분업으로 인한 편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의약분업을 도입한 현재의 시점이 사회경제적인 환경은 물론 의료보험 재정 역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의약분업이 순조롭게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임은 분명하다.

또 의약분업은 현대의학의 도입, 나아가 한의학이 정착된 이후 오랜 기간을 거쳐 굳어져온 국민 관행을 고치는 문제다.

때문에 단기간내에 의약분업의 틀을 완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적 수준에 맞게 정책내용이 조정돼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사제 문제 역시 ''약물 오남용 방지''라는 당위적인 입장과 보험재정의 형편이나 주사제 대상환자들의 취약한 건강상태를 고려한 불편 문제와 같은 현실적 제약조건과의 면밀한 대차대조표에 의거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약분업 평가를 위해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해 조사가 진행중인 점은 적절한 조치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평가의 중요성에 비추어 현재의 평가방향이나 내용을 볼 때 과연 향후 올바른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우선 평가내용에 중요하게 포함돼야 할 사항들이 누락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의약분업정책이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또는 의약분업정책으로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게 추계돼야 앞으로 의약분업의 세부 내용들을 조정해 나갈 수 있다.

이는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 검토됐어야 하나,기초자료가 부족해 정책소요 비용을 놓고 논란이 있어 왔다는 점에서 실제자료를 이용하여 재평가해야 하는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제외되어 있다.

또 평가의 목적이 예견됐던 문제점들이 현재 얼마나 현실적으로 표출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시정조치하는데 있다고 할 때 이러한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도 지적돼야 할 사항이다.

예를 들면 의료계에서 의약분업의 주된 문제점으로 제기했던 임의조제나 대체조제 문제 등이 모두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평가작업에 책정된 예산규모가 미약하다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의약분업을 주관한 부서가 스스로 평가하는 모양새가 되어 앞으로 평가결과가 제시됐을 때 공정성을 놓고 논란이 야기될 소지가 있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정책이니만큼 복지부 수준이 아닌 총리실 차원에서 연관 부처와 연구기관들을 참여시킨 평가단을 구성하고 평가하는 것이 결과의 공정성과 정책의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평가주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무쪼록 어렵게 시행된 정책이니 만큼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부족한 정책내용들을 보완해서 정책부실이 최소화되기를 기대한다.

lsho270@mmj.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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