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이 < 맥킨지인코퍼레이티드 컨설턴트 sy@media.mit.edu >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고 디지털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사회가 약속한 혜택 가운데 하나는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차별화된 맞춤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번 주말에도 야구장에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리는 오랜 친구,평소 차분한 영화를 좋아하지만 요즘 기분이 우울하다는 걸 눈치채고 주말에 액션영화를 보자고 제안하는 동료 등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는 사람들,내가 말하는 것과 실제 느끼는 것 사이의 차이를 감지할 줄 아는 이들로부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친밀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는 이러한 맞춤화가 쉽고도 자연스럽다.

''아톰(atom)''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재화 같은 엄청난 재료와 고도의 가공이 필요하지 않아도 전기적 신호에 의한 ''비트(bit)''의 가공과 재화의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사용자 행동패턴이나 서비스 이용실태를 손쉽게 관찰하고 통계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나아가 앞으로 소비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추론할 수도 있다.

A카드사는 고객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섬세한 서비스로 유명하다.

친구 한 명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다.

얼마후 카드대금 청구서와 함께 유명 여자속옷을 통신판매하는 회사의 카탈로그가 배달됐다.

카드 사용액이 갑자기 영화관람과 외식 등에 집중되자 그 친구의 나이 등을 정밀 분석한 카드회사는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해 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에 즈음해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만한 제품 카탈로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디지털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게 하기도 한다.

감시 카메라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것과 같은 두려움과 현기증이 엔터키를 두드리는 손을 멈칫하게 한다.

그래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들추지 않더라도,우리는 가끔 그 누구도 아닌 ''익명의 나''를 꿈꾸게 된다.

신상명세서의 빽빽한 빈 칸을 채울 필요가 없는 웹사이트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아무도 아니고 싶어하는''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