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경제적으로 격동의 한 해였다.

금융.기업 부문의 구조적 불안요인이 내재된 가운데 기업퇴출, 대우자동차 매각실패, 현대사태 등 충격이 이어졌다.

기업들은 신용경색과 은행의 몸사리기로 심각한 자금경색을 겪어야 했다.

경제불안은 새해에도 이어져 기업의 투자의욕은 꺾이고 있고 "제2경제위기" 공포감마저 감돈다.

"새해 우리경제는 어디로 가고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명확한 상황진단이 어느해보다 절실하다.

한국경제신문은 새해를 맞아 김기환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 회장과 김병주 서강대 교수, 유상부 포항제철 회장, 이진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 참석자 ]

<> 김기환 <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 회장 >
<> 김병주 < 서강대 교수 >
<> 유상부 < 포항제철 회장 >
<> 이진순 < KDI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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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환 회장 =귀한 시간 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대체적으로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제2경제위기설"도 경제전반에 파급됐었구요.

이로인해 국민들의 불안도 증폭됐는데요.

우선 작년 우리의 경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죠.

<> 김병주 교수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GDP 성장률은 작년 3.4분기 9.2%였던 반면 GNI 성장률은 이의 3분의 1 수준인 3.4%에 머물렀습니다.

상당한 체감경기의 차이가 있었던 겁니다.

즉 국민들이 생산한 것에 비해 소득 증가가 뒤따르지 못했던 것이죠.

고유가와 주가하락으로 인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소비가 크게 위축된 것도 사실입니다.

또 금융부문의 자금경색, 현대건설 사태 등이 작년 하반기 우리 경제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 이진순 원장 =2.4분기 이후 내수가 떨어지기 시작해 현재까지 소비와 투자가 동반 하락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경기하강 분위기속에서도 수출호조로 경제성장률은 2.4분기 9.6%, 3.4분기 9.2%를 기록해 성장률 자체는 높았습니다.

국민들이 위기감을 느낀 이유는 반도체가격 하락, 고유가 등으로 인한 교역상황 악화로 실질구매력이 떨어진데 있습니다.

구매력의 하락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실제 체감경기와 지표경기간의 괴리가 생겼던 거죠.

<> 김 회장 =기업퇴출, 현대사태 등으로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컸을텐데요.

<> 유상부 회장 =지난달 전경련이 6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68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8월 66에 이어 가장 낮은 수치였죠.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악화된 것은 금융불안에 따른 자금경색 심화,기업 채산성 악화 등 불안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데 따른 것입니다.

이밖에도 노사관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 각층의 대치갈등 구조가 심리적인 위축감을 줘 기업들의 운신폭은 더욱 좁았죠.

작년 한해 산업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습니다.

반도체 정보통신 등 IT(정보기술) 관련업체와 건설 등과 같은 재래산업간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습니다.

개인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졌던 것처럼 말이죠.

<> 이 원장 =금융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했으나 기업들은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 두 패러다임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암묵적인 보험의 혜택을 누려 왔습니다.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가 심했던 거죠.

하지만 재작년 대우사태와 은행들의 퇴출을 계기로 암묵적 보험이 깨진거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은행이나 기업들은 이제 수익뿐만 아니라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김 교수 =작년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자금경색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을 겁니다.

올 2월로 예정된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시중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기업금융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은행들은 위험자산에는 투자를 안한다는 입장이었죠.

이로 인해 기업들은 차환을 발행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대사태가 대표적인 케이스죠.

올 2~3월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20조가 넘을 전망입니다.

기업들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시장에서의 생사문제와도 직결됩니다.

<> 김 회장 =김 교수 말씀대로 금융권의 기능마비로 신용경색이 심해졌었는데도 기업들의 부도율은 높지 않았습니다.

<> 이 원장 =금융시장을 살펴보면 작년 대우사태를 전후해 직접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은 마비됐습니다.

다수의 부실기업들이 이미 1998년에 퇴출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어 산업전반에 잠재부실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업의 부도율이 상승하지 않은 이유는 재작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기업들이 사상초유의 영업실적을 올린 덕분입니다.

현재는 기업들의 현금보유량이 많아 자금경색을 버틸수 있지만 거기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겁니다.

<> 김 회장 =올해 우리경제에 대한 각 연구소들의 전망은 한결같이 부정적입니다.

경제성장률도 5%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올해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유 회장 =지난해말 대한상의가 발표한 올해 업종별 산업전망에 따르면 조선, 전자를 제외한 업종들이 경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다 기업들은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에 대한 부담도 큽니다.

기업들에는 고통스러운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 김 교수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금융경색을 넘기고 은행 등의 금융구조조정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올 경제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올해는 국내경기의 침체로 수입수요가 떨어질 것으로 보여 경상수지 흑자유지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환율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상반기와 같은 경제상황 호조는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 이 원장 =대내외적인 경제상황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올해 경제를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KDI는 구조조정이 지속되고 외부충격이 없는 한 5%대의 경제성장, 3%의 물가상승, 92억달러 경상수지 흑자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경제상황이 어려운건 사실이지만 절망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 김 회장 =작년말부터는 제2의 금융위기설도 거론되곤 했는데요

<> 이 원장 =1997년말과 같은 외환위기 재발 위험성은 없다고 봅니다.

현재 외환보유액이 9백30억달러가 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 김 대사 =그렇다면 정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은 무엇이겠습니까.

<> 이 원장 =한국에서 금융위기 가능성이 논의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의 잠재부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참여자들의 부실정도를 판단할만한 기준이 없는게 현실입니다.

올해 경제가 회복하느냐 장기침체에 빠지느냐의 관건은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에 대한 의지입니다.

이밖에 현재 무너져가고 있는 시장경제의 자유경쟁과 자기책임의 원칙도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 김 교수 =금융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부실기업의 청산을 포함한 고용.투자 등의 실물경제 구조조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합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겨나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 김 회장 =우리경제의 잠재된 부실이 기업에서 비롯된 만큼 이 시점에서 기업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 유 회장 =진부한 얘기지만 철저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숫자 위주가 아닌 국제적인 경쟁력 기준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국내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만 생각하는데 이제는 평소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이 원장 =끊임없는 R&D(연구개발)로 생산제품의 고부가가치화에 주력해야 합니다.

해외 선진기업과의 과감한 제휴를 통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기업들의 생존전략은 기본적으로 세계화를 통한 선진기술의 도입밖에 없습니다.

<> 김 회장 =작년 한해 세계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감이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개혁이 지체되는 상황에서는 세계화를 통한 역치료법도 유효하지 않을까요.

<> 김 교수 =그렇습니다.

한국의 현상황과 같이 이익집단간의 절충이 안돼 경제가 정체에 빠졌을때 세계화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특히, 정치와 관료들에 개혁리더십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접근할수록 세계화의 힘을 빌어서라도 내부개혁을 해야 앞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전반의 개혁 잣대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마련돼야 합니다.

<> 이 원장 =진정한 세계화의 정착을 위해서 우선 성공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쇄국정책적 발상에서 벗어나 특정국가와의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이 하루빨리 가시화돼야 합니다.

작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통해 정부나 기업들이 세계화에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정부는 선진기업들이 한반도를 동북아 전진기지로서 삼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충분한 매력을 부여해야 합니다.

<> 유 회장 =국내기업들간의 제한적인 경쟁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이 한반도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런 초국적 기업은 역으로 정부에 범지구적 기준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내부적인 개혁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김 회장 =현재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도 무시 못할 수준입니다.

<> 유 회장 =우리국민들은 과거 고도성장의 관성에 젖어 있습니다.

경제의 견실함과 속도감이란 절대 비례할수는 없습니다.

올해 예상되는 5%대의 경제성장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잠재성장률이 5~6%인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속도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김 교수 =맞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성장은 우리자신의 힘이었다기 보다는 외부적인 환경의 영향에 힘입은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조절가능한 경제성장이냐는 것입니다.

과다차입을 통한 투자로 성장하는 경제보다는 사회 각 부문별로 충격이 완화된 우리에게 무리없는 경제성장이 바람직합니다.

정리=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