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극''이 막을 내릴 줄 모르고 있다.

어떤 결말을 보이든,백악관 새 주인은 미국 집정자로서의 정통성이 훼손될 형편에 있다.

차기 미국 정부가 국정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많은 예측이 나왔다.

현재까지의 법적 당선자인 조지 부시가 집권할 경우에는 공화당의 보수적 절대주의적 전통이 새 정부를 지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선거 기간 중 파이낸셜 타임스지(紙)는 ''미국에 정당한 것과 필요한 것의 대결(What''s right for America vursus what works)''이라는 제목의 애미티 슐래이스(Amity Shlaes)의 칼럼이 실렸다.

대통령을 향한 고어와 부시의 경주가 ''미국을 이끄는 두 주축,즉 법률가(lawyers)집단과 MBA 집단의 대결''의 한 장(場)으로서 조명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양대 세력이 로스쿨과 비즈니스스쿨 출신 엘리트 집단이고,이들이 각기 특유한 정치문화를 형성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새 정권의 인물적 배경은 당(黨)의 색채만큼이나 향후 미국정부의 성향을 조성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여진다.

법률가들은 세상사를 ''옳은 것(right)''''그른 것(wrong)''''권리(rights)''의 세가지 범주로 인식한다.

이들에게는 법의 세계가 절대적이다.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선 비용을 따지지 않는다.

도덕적 악(惡)을 시정하기 위해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남북전쟁도 주저없이 행한 링컨 대통령은 법률가-대통령의 역사적 전형이 된다고 한다.

민주당 후보인 고어는 이러한 법의 문화를 대표한다.

그는 밴더빌트에서 법학 및 비슷한 학습성향을 가진 신학을 전공한 배경이 있고,법정 변호사들을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업고 있다.

고어는 환경훼손이나 지구촌의 잘못은 모두 개입해서 시정해야 할 문제로 본다.

국가채무는 개인 파산이나 마찬가지의 죄악으로 간주되므로 이것을 다른 목적을 위한 예산의 한 수단으로 보는 견해란 그에게 존재할 수 없다.

역시 로스쿨 출신인 클린턴 정부하에서 막대한 재정흑자가 쌓아진 업적이 나타났다.

반면 MBA문화는 모든 사물을 실용주의적 접근대상으로 보며,이익과 비용의 견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부시는 하버드 MBA학위를 지닌 전형적 MBA 사람이다.

그의 정치헌금자들은 경영자집단이며,부통령후보 지명자인 리처드 체니도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부시의 정치와 외교노선은 유연성과 이익에 따른 선택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는 정의수호 명분에 집착한 소말리아와 아이티에의 파병은 반대할 일로,반면 인권문제가 항상 걸리는 중국과의 통상은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적 자세 때문에 공화당원들도 당선 뒤엔 부시가 당의 전래적 정강인 누진세율 삭감까지도 다른 정치적 이익과 교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향후 선택될 미국정부의 새 외교정책,특히 대북한 정책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양 후보자의 인물적 성향은 그 출신 당의 성향과 대치되는 양상을 보인다.

유연하고 진보적인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는 정의와 원칙을 고수하는 법률가문화의 전형적 인물이다.

고어가 당선될 경우 인권이 무시되고 무기수출과 테러자로 낙인찍힌 북한을 쉽게 용납할지는 의문이다.

반면에 보수적 고립주의적인 공화당의 후보는 효용과 타협을 좋아하는 MBA인물이다.

따라서 부시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대북한 자세가 우리의 예상과 같이 강경하게 유지될 것인가 의문시된다.

인물적 성향에서 부시가 실용적 선택을 보다 선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되든 미국의 새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입은 권위의 손상을, 지도력의 과시를 통해 만회해야 할 입장에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아직도 세계의 질서형성에 주축이 됨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새 정부의 외교정책이 보다 적극적이며 개입주의적인 경향을 가질 것을 시사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