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가 2천4백억원 규모의 현대투신 주식 매입자금 대지급문제를 놓고 변호인 선임에 착수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현대전자는 27일 현대중공업에서 손실부담 차원에서 75억원을 주겠다는 의사를 제시했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를 거절하고 소송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캐나다 은행인 CIBC로부터 사들인 1천3백만주의 현대투신 주식을 현대전자에 넘겨주는 대신 2천4백억원을 받아야겠다''는 입장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는 또 지난 97년 7월 현대전자가 현대중공업에 써준 각서 내용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측의 시각은 현대중공업과 다르다.

당시 각서가 ‘손실분담’ 차원에서 작성된 만큼 현대투신 주식매각으로 얻은 이득(75억4천만원) 범위 내에서 각서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같은 계열사간 문제가 이처럼 꼬인 이유는 현대 구조조정위원회의 거중조정이 먹혀들지 않을 정도로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들의 입장이 강경한 데다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 양측의 불신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진원 이선호 박준환 박상혁 이민화 등 5명의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진은 “회사가 더이상 그룹측의 이해관계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추가 지원은 불가하다는 데 못을 박았다.

사외이사 A씨는 “당초 전자측과 원만한 합의를 시도했었으나 증권측이 워낙 무리한 주장을 하면서 틀어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5월 현대아산 증자에 중공업이 참여할 때도 그쪽(현대아산)은 부탁조가 아니라 명령조로 증자 참여를 요구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대전자측은 이에 대해 “중공업이 그룹쪽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살길’만 찾아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못내 섭섭해하는 분위기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외자 도입의 불가피한 정황을 감안해볼 때 중공업의 처사는 너무 야박하다”며 “당시 여건과 각서 내용을 포괄적으로 검토해보면 우리가 재판에서 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전자측은 당시 CIBC에 대한 지분매각은 완벽한 형태의 외자 유치였고 중공업과 CIBC가 약정한 풋옵션(주식재매입 청구권)은 자사와 무관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놓고 일각에서는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와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과의 ‘갈등’에서 야기됐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최소한 지금 단계는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들이 주도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