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지난주에 은행에서 일하신다는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그 분은 수요일의 내 글을 읽으면 "철학적"이 된다고 하셨다.

집에서 한푼 두푼 아끼느라 살림살이에 힘겨워하는 부인이 생각나기 때문이란다.

"젊은 여자가 골프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었다기 보다는 그때가 한창 금융계 파업문제 때문에 심난하셨기 때문일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의 의견에 공감했고 고민스러워졌다.

내가 신문 한쪽에 쓰고 있는 이 글이 어떤 분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어머니가 내게 넌지시 물으신 적이 있다.

"나도 골프 배워볼까? 3층 아줌마도 치고,동대문 도자기집 아줌마도 치고..."

내가 불효녀여서 일까?

골프를 치면 세상이 달라지니,배울 것이 많으니 하는 글을 쓰는 나인데...

나는 "엄마,그걸 왜 배우려 하세요?"라고 했다.

지하철 노선표 보는 것도 복잡해하시는 분인데,어떻게 그 폴로 스루니,스윗 스팟이니 하는 용어들을 이해하실까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우려는,택시보다는 버스를 이용하고,보다 싼 찬거리를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 과연 기십만원을 들여가며 필드로 나가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괜히 큰 맘 먹고 시작하셨다가 오히려 마음의 상처만 받고 그만두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마음놓고 권해드릴 수 없는 운동.

"능력없으면 안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력없다는 이유로 골프를 등지기에는 이것이 가진 이점과 매력은 너무도 풍부하다.

골프와 밀고 당기며 나이를 먹어가고,체력이 노쇠하여도 받아주며,나무가 뿜어대는 산소를 맘껏 마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오래된 중고채를 들고서도,저렴한 캐주얼 의상을 입고서도 기죽지 않고 필드에 설 수 있는 날,그린피가 2~3만원이여서,그 옛날 동네 볼링장 가듯 온 가족이 어울려 골프장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어머니도,그 은행지점장님의 알뜰한 부인도 걱정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푸른 잔디를 밟고 선 어머니가 소녀처럼 좋아하실 모습을 생각하니,이 아침 나도 어느새 철학적이 된다.

내가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권해드려야 하는 것인지...

다른 나라에서도 골프를 친다는 것이 이렇게 고민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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