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영국원본을 내놓아라."

해리 포터열풍이 불고있는 미국에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출판사에 항의한 내용이다.

해리 포터의 미국쪽 출판사가 "영국어"를 "미국어"로 번역(?)해 내놓는 과잉친절을 베풀어 미국어린이들이 영국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는 게 이 아버지의 주장이다.

서편제는 전라도 보성말로 들어야 제 맛인데 경상도말로 바꿔놓아 그 재미가 반감됐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다.

실제로 미출판사는 해리 포터의 책제목까지 바꿔버렸다.

영국에서 출간된 제1권의 제목은 원래 "해리 포터와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Sorcerer"s Stone)"로 바뀌어 버렸다.

영국에서는 엄마를 mum이라 부르지만 미출판사는 이를 미국말인 mom으로 불렀다.

또 영국식 회색(grey)을 미국식 철자법인 gray로 바꿔놓았다.

해리가 여자친구인 허마이오우니(Hermione, 저자가 이렇게 발음함)와 차(tea)를 마시며 먹는 핫케익의 일종인 크럼핏(crumpet)은 미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국식 잉글리쉬 머핀(English muffin)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지만 미출판사는 "크럼핏"을 "잉글리시 머핀"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영국음식과 차 문화를 있는 그대로 접할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마법학교 호그와츠(Hogwarts)로 떠나는 런던 킹스 크로스역의 플랫폼 번호는 9나 10이 아닌 "9와 3/4"다.

마법세계를 그리기 위해 분수를 도입한 것은 저자 로우링의 대표적 창조품이다.

로우링은 많은 신조어도 만들어 냈다.

마법을 모르는 평범한 일반인을 머글(muggle)이라 부르고 뱀과 대화할 줄 아는 마법사를 파슬마우스(parselmouth), 그리고 빗자루를 타고 벌이는 축구 비슷한 경기를 퀴디치(Quidditch)라 불렀다.

느린 동작(slow motion)과 리플레이(replay)를 즉석에서 볼수 있는 망원경인 옴니오큘러(omniocular)도 환상속의 고안품이다.

어차피 이들 모두가 생소한 단어인 마당에 영국어를 미국어로 바꿔 놓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상상력과 흡수력을 어른들이 과소 평가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5년전 한글날 기념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한글에 대한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 한국외대에서 오랜 세월 강의하고 있는 미국인 교수 한 분이 나와 "영어 알파베트와 한글간에 음가(음가)가 같은 것은 거의 없다"며 잔치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글과 영어는 사실상 같은 발음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 "가까운 소리"를 낼뿐이라는 설명이다.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은 Ottawa를 "아라와"에 가깝게 발음한다.

우리의 표기법은 "오타와"다.

San Jose의 발음은 "샌 호세"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의 표기는 "새너제이"로 되어있다.

우리 표기대로 읽으면 어느 미국인도 알아듣지 못한다.

Human genome은 영미가 주도하고 있다.

유전학의 아버지인 멘델도 이쪽 사람이다.

이들 영미사람들이 "지놈"이라 발음하는 genome을 한국에서는 "게놈"이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도 "원음에 가깝게 발음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표기법에서 원음이 무시되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모든 사람이 "햄버거"라고 발음하는데 "햄버저"를 고집한다면 영미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해리 포터의 영국원본을 내놓으라"는 미국부모의 요구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달라"는 뜻일 것이다.

불행히도 영국어를 그대로 읽을 수 있는 한국 어린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 애들도 커가며 다른 지구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해리 포터는 열풍만큼이나 미래지구촌을 형성할 주역들의 공통분모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음에 가까운 발음,정확하고 자세한 주석은 제2의 창조이자 우리 기성세대가 후세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성의다.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