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통령과 장관의 역할 분담..노성태 <한국경제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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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29일 한국의 경제자문단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궁 회의실에서 그나라 장관들과 함께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있어 나자르바이예프 대통령은 필기노트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통역을 통해 자문단의 경제정책 권고안이 보고되는 동안 대통령은 쉴 새없이 메모를 하고 있었다.
보고가 끝난 다음 대통령과 장관들간에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는데 대통령의 생각에 반대하면서 고함을 지르다시피하며 자기의견을 펴는 장관도 있었다.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틈틈이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전 까지 TV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발언하면 장관들이 모두들 열심히 받아적는 모습만 보아온 우리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에게 경제자문을 요청하는 수준의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때 일이 새삼 생각나게 된 것은 지난 2주간 국내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대통령과 장관들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논란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큰 일을 두 가지나 해 내었다.
하나는 합치기 위한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나누기 위한 일이었다.
분단이후 55년 동안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나온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북으로 날아가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의와 약을 분리시키려다 생겨난 의료대란을 여야 총수회담을 통해서 조기에 진화하는데 일단 성공하였다.
대통령이 큰일을 하는 동안 장관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가?
과제들이 마무리되면서 장관들의 경질설이 나도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번 일들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위상과 권한은 더욱 높아지고 강화된 반면 장관들의 그것들은 초라해 져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앞으로는 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늘어나리라는 추측들도 나오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각에서는 장관들이 소신이 없어 대통령한테 직언을 못하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서 개각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인사들일수록 오히려 대통령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못들 인물이라면서 애궂은 장관들한테만 희생양 노릇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의약분업 문제에 있어서도 장관만 앞세워 고군분투하게 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통령이 장관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장관과 함께 의료계의 사정을 경청해가며 설득에 나섰다면 폐업이나 파업이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대통령을 보호하고자 하는 측근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대통령은 장관과 달라 실수나 입장변경이 용납되기 어려우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나서지는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보호가 될지 모르지만 장관들은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되다가 자리를 내놓는 것이 관례처럼 돼 버릴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장관도 대통령에 못지 않게 보호되어야 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이런 관례가 정착되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익집단들은 장관의 기능이나 권한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장관에 대한 불신은 결국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연장되게 마련이다.
현재 허다한 개혁과제들을 두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장관들의 위상과 권한이 재정립되고 대통령이 이들을 지지하며 힘을 실어주는 등 보다 민주적인 방식의 국정운영이 이루어진다면 정부의 신뢰도는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합치거나 나누는 큰 일은 적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은행들의 합병이나 대기업들의 계열분리가 대표적인 과제들이다.
이 문제들의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방침이 자주 바뀌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어져 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대통령과 장관들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지고 대통령의 지원과 장관들의 소신있는 실천이 합쳐져야 난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있어 나자르바이예프 대통령은 필기노트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통역을 통해 자문단의 경제정책 권고안이 보고되는 동안 대통령은 쉴 새없이 메모를 하고 있었다.
보고가 끝난 다음 대통령과 장관들간에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는데 대통령의 생각에 반대하면서 고함을 지르다시피하며 자기의견을 펴는 장관도 있었다.
대통령은 그동안에도 틈틈이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전 까지 TV를 통해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발언하면 장관들이 모두들 열심히 받아적는 모습만 보아온 우리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에게 경제자문을 요청하는 수준의 국가에서 있었던 일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때 일이 새삼 생각나게 된 것은 지난 2주간 국내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대통령과 장관들의 위상과 역할에 관한 논란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최근 큰 일을 두 가지나 해 내었다.
하나는 합치기 위한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나누기 위한 일이었다.
분단이후 55년 동안을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나온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대통령은 몸을 아끼지 않고 북으로 날아가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의와 약을 분리시키려다 생겨난 의료대란을 여야 총수회담을 통해서 조기에 진화하는데 일단 성공하였다.
대통령이 큰일을 하는 동안 장관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가?
과제들이 마무리되면서 장관들의 경질설이 나도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번 일들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위상과 권한은 더욱 높아지고 강화된 반면 장관들의 그것들은 초라해 져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앞으로는 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늘어나리라는 추측들도 나오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각에서는 장관들이 소신이 없어 대통령한테 직언을 못하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서 개각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인사들일수록 오히려 대통령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못들 인물이라면서 애궂은 장관들한테만 희생양 노릇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의약분업 문제에 있어서도 장관만 앞세워 고군분투하게 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통령이 장관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장관과 함께 의료계의 사정을 경청해가며 설득에 나섰다면 폐업이나 파업이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대통령을 보호하고자 하는 측근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대통령은 장관과 달라 실수나 입장변경이 용납되기 어려우므로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나서지는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보호가 될지 모르지만 장관들은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되다가 자리를 내놓는 것이 관례처럼 돼 버릴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장관도 대통령에 못지 않게 보호되어야 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이런 관례가 정착되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익집단들은 장관의 기능이나 권한을 무시하고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될 것이다.
장관에 대한 불신은 결국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연장되게 마련이다.
현재 허다한 개혁과제들을 두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장관들의 위상과 권한이 재정립되고 대통령이 이들을 지지하며 힘을 실어주는 등 보다 민주적인 방식의 국정운영이 이루어진다면 정부의 신뢰도는 한층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합치거나 나누는 큰 일은 적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은행들의 합병이나 대기업들의 계열분리가 대표적인 과제들이다.
이 문제들의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방침이 자주 바뀌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어져 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대통령과 장관들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지고 대통령의 지원과 장관들의 소신있는 실천이 합쳐져야 난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