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TV에서 보았다.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그러니까 이 순간에도 선뜻 호칭을 정하기가 두려운 이미지의 사람과 서 있는 모습을.

냉철한 판단은 보류하고 싶었을까.

너무나 인간적인, 푸근한, 수수한 사람들처럼 웃고 있는 모습에 그만 속아 넘어 가버린 것이었을까.

좋아서 눈물이 앞섰다.

그저 어찌하면 저 순간이 더 값지게 되는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한 순간이 안되도록 붙잡아 맬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어디서 무엇으로 그 순간을 다시 살 수 있겠는가.

그런 설렘 눈부심 눈물겨움이 아무렴 몇 사람만의 영혼으로 그처럼 영롱하게 빛날 수 있겠는가.

아무데서나 아무의 순간에나 낳아질 수 없는 것, 그 무엇으로도 함부로 쳐다볼 수 없는 것으로 다가왔다.

맘껏 정성껏 감동해 주는 일만이 저 아름다운 언약이 유효해지는 것인양 기뻐했다.

물론 그 순간을 뚫고 솟아오르는 연기 같은 것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빈번히 유산됐던 만남 약속 결렬 후의 허탈을 잊고 싶었다.

이렇듯 마냥 기뻐했던 우리들의 기쁨 옆에 심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차 싶었다.

개인의 상처를 가볍게 여긴 자책의 물결이었다.

그러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봐 주기를 그분들에게 원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인가.

부디 상처를 아프게 가리면서 민족적 비극을 씻을 수 있는 "기회의 품"을 넓히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싶다.

어쩌면 이미 그분들도 그런 마음을 품었을지 모른다.

다만 상처받는 소수의 아픔에 대한 주위의 배려가 아쉬웠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세계 유일의 남북 대치국가다.

그래서인데 저 미소를 과거의 일들과 오버랩시켜서 보지 말자.

믿은 만큼 더 큰 낭패를 전 세계가 구경하는 가운데 다시 겪게 될지라도 미리 부정적 상황을 예견할 필요가 있을까.

양보 없는 냉소 관계보다는 한발 물러선 화해가 더 아름답다고 본다.

이미 전 세계는 한 가족이 됐다.

한 국가의 갈등관계는 전 세계의 갈등관계일 만큼 그 진실을 아주 가깝게 촘촘히 지켜보고 있고, 한 순간에 촘촘히 드러나고 있으므로.

직업중에서 정치를 "가장 부러워할 수 없는 일"로 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번 남북회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른 느낌 하나를 얻었다.

이번의 감동은 정치, 즉 정부가 우리들 가슴에 심어준 최초의 꽃이었고 달디단 과즙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혹 정치의 이면, 즉 이번 남북회담이 속빈 강정인줄 뻔히 알면서 티끌만큼이라도 개인의 영웅심이나 당의 지지효과에 더 마음을 빼앗긴 선택의 몸짓이었다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솔직히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남북회담의 과정이나 성과를 우려와 부정적인 측면에서 애써 찾아내 부각시키려 하는 입과 눈을 경멸하고 싶다.

선제권을 빼앗겼다는 상실감, 혹은 이번 정부에 대한 편견, 그러한 세력을 업고 우뚝 서 보려는 세력의 야만성이 통일문제에까지 끼어 드는 행위만은 용서할 수 없어서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몇 번이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설사 번번이 그 곳은 역하고 아픈 시체들만 즐비해서 좀처럼 회복시킬 수 없는 인간애의 상실이 두려울 만큼 참혹한 기억만 안겨줄지라도 6.25 오십 돌에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다.

이번의 남북회담이 50년 전, 또 스무 해 전에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몸의 일부를 잃고 고향을 잃은 분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지 못하고 되살아나는 분노의 현장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뜨거워졌던 순간, 그 순간의 언약이 더욱더 인간의 가슴을 따뜻한 물결로 요동치게 하는, 빛나게 해주는 거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싸움이란 세계의 문이 덜 열려진 사회, 아직도 미지의 세계가 있어 인류가 공동으로 누려야 할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내겠다는, 자신만이 그 세계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 몇몇 용사들의 망상 혹은 잘못된 영웅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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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원광대 국문과 박사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