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남북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워싱턴도 바빠졌다.

미 기업연구소(AEI)와 브루킹스가 7일 같은 날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전문가들을 불러모아 세미나를 열었다.

오전에 먼저 회의를 연 AEI가 내건 주제는 "과연 정경은 분리될 수 있는가"였다.

결론적으로 "정경분리는 가능하지 않은 명제"라는 게 참석자들 대부분이 취한 입장이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정경분리가 개념 자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센터의 태평양문제연구소장의 입장이었다.

컬럼비아법대에서 강의를 하는 노정호 교수는 "이익을 내는 행위가 북한민법에 저촉되는 상황에서 정경분리란 생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버드대 인구문제연구소의 니컬러스 에버스태트도 "70년 넘게 사회주의적 계산법에 익숙해 있는 북한에서 정경분리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고 반문하는 것으로 주제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이들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남한에 대해서도 정경분리는 사실상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플레이크 소장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익창출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자세를 취했다.
그렇다고 해서 김 대통령의 접근법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비시장경제적인 접근방법이 오늘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말 변할 것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의문도 제기됐지만 "회의적"이라는 게 전반적 반응이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위상,그리고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중국과 한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의 분석이었다.

마커스 노랜드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위원은 "과거 중국을 수정주의로 비난했던 김정일이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놀라운 변화"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브루킹스가 마련한 세미나에서 1994년 북.미기본핵합의를 이끌어 낼때 국무부 조정관으로 일한 조엘 위트 브루킹스연구소 국제정책연구위원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크게 네가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서울에서의 후속 정상회담 개최여부 문제, 둘째 상호 유익한 경협의 창출, 셋째 이산가족문제해결, 그리고 넷째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적인 접촉의 확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아 있는 김정일이 방향을 어떻게 틀 것인가를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위트 위원은 덧붙였다.

로버트 수팅거 브루킹스 국제문제연구위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서방은 뭔가 실질적인 것 (substance) 을 기대하고 있으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제는 지난 1945년 이후 단절되었던 남북정상의 만남이 갖는 상징성( symbolism )에 있다"고 그 성격을 규명하면서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외부의 부풀려진 기대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연사들은 모두 미국인들이었다.

그러니 핵문제와 미사일문제가 거론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EI가 마련한 오찬연설에서 폴 월포위츠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은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북한의 미사일이야말로 지구촌안전의 최대 위협"이라고 강조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진지한 관심을 주문했다.

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합의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노랜드 IIE 연구위원은 "경수로가 경제적으로 전혀 타당성이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릴리 전주한미대사는 "제네바합의는 계약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월포위츠 대학원장은 "제네바합의를 원점에서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인들은 "경제 먼저" "민간 먼저" "쉬운 것 먼저" "먼저 주고 나중 받는다"는 4대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과는 의제에 있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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