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이 시기에 인터넷사업 분야를 확장시키려고 외자를 끌어들이는 데 이 이사는 동의하지 않으시지요?"

진성호의 질문에 통로 옆자리로 옮겨 앉은 이현세는 침묵을 지켰다.

진성호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어요.

각 대통령 후보들 진영에 줄 선거자금을 선거가 있기 한달 전까지 주어야 해요.

그런 막대한 재원을 앞으로 2개월 내에 마련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요".

"각 진영에서 그런 요청이 있었습니까?"

"측근에서 암암리에 그런 요청을 해왔지요.

한 진영의 핵심측근은 러시아의 옐친을 당선시킨 미국 선거 전문팀을 고용할 안을 고려중이라며 비용부담을 할 용의가 있냐고 타진해왔지요"

"얼마나 됩니까?"

"6백만달러 가까이 돼요"

이현세가 아연실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성호가 침묵을 깨고 지나가는 스튜어디스에게 칵테일을 시켰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칵테일을 마셨다.

"미국 선거전문팀 고용비용을 대겠다고 응낙하셨습니까?"

이현세가 진성호에게 물었다.

러시아의 옐친을 당선시킨 선거팀의 고용비용 6백만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고 그 당이 당선된다는 확증도 없었다.

단호히 거절할 형편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을 해보겠다고 했지요"

"그쪽의 당선이 확실할까요?"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으나 결국 여당이 여론을 뒤집어놓지 않을까요?

"어떻게요?"

이현세가 의아해하는 표정 속에 다시 물었다.

"급하면 막판에 가서는 돈을 뿌려서라도 바꿔놓을 거예요.

끝판에 가서 각 지구당에 1억에서 2억 정도씩,전국에 약 3백억에서 6백억만 뿌리면 50만표 정도는 무난히 더 얻을 수 있는 게 한국의 투표성향이라고 믿고 있더군요"

"무서운 세상이군요"

"현실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해요? 그것이 속일 수 없는 국민 수준이죠.현재의 여론조사 결과 표 차이가 기껏해야 50만 표 이하인데 3백억에서 6백억,즉 한 표당 평균 6만원에서 12만원 사이로 쓰면 50만 표 정도는 끌어들여 결국 지지자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는 거죠"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진성호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7년 전 대해그룹의 경영을 형 진성구로부터 물려받은 후 회사의 중역에 대해 내린 결론은,진정하게 회사의 장래를 걱정하는 양심적인 중역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사의 약점을 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중역을 강제로 내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차선책으로 세운 것이 조직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어줄 젊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40대 초반인 이현세를 기획담당 이사로 영입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