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증권시장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식시장이 불안하고서야 경제의 각 부문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갓 벗어난 우리 처지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외환위기 자체만 하더라도 외국인들이 대량으로 국내주식을 매각하고 떠나면서 촉발되었던 측면이 강하거니와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개혁등 대부분 개혁 과제들도 증권시장이 활황을 보이고서야 비로소 실행가능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증권시장이 매우 불안한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시장 안정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한 관심 표명이라고 본다.

그러나 바늘 허리에 꿰어 쓸 수 없고 아랫돌 뽑아 윗돌을 괼수 없듯이 비록 긴급한 증시 대책이라 하더라도 원칙에 맞고 실효성도 있는 방법이라야 한다고 본다면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확대하고 시중은행의 증권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이헌재 재경장관의 발언은 분명 무리가 있는 발언이다.

국민의 재산인 국민연금을 증시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나 BIS비율 때문에 기업대출조차 꺼리고 있는 은행에 대해 대출보다 더욱 위험한 주식투자를 늘리도록 하겠다는 당국자의 생각은 위험천만이다.

더욱이 연기금등은 관련 법령에 의해 엄연히 자산운용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국민연금법에 의해 기금운용위원회가 설립되어있고 투자의사결정은 오직 이 기구에 의해서만 가능하거니와 지난해 9월에 결정된 2000년 자산운용 방침에 따라 올해 주식투자한도는 이미 6천억원으로 확정되어있는 상황이다.

또 법에 의해 목표수익률까지 부여되어 있는데다 이미 3조원 정도의 보유주식 만으로도 올들어서는 상당한 투자손실을 보고있는 터에 재경부가 어떤 근거로 연기금의 주식시장 투입을 거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투자신탁이나 은행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투신사들은 공적자금 투입이 거론될 정도로 이미 형해만 남은 실정이고 은행 또한 주식투자가 가능한 단위형금전신탁 만으로도 이미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백번을 양보해 투신과 은행이 설사 여유자금을 쌓아놓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들에 대해 자산운용의 대상과 시기등에 개입하고 지시할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증권시장의 다급한 사정을 헤아리는 것은 옳다고 하겠으나 어디까지나 법정신에도 걸맞고 시장원리에도 어긋남이 없는 범위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투신과 은행을 증시로 밀어냈던 지난 시절의 낡은 유행가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