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31일 인천 송도.

국내에서 처음 열린 대규모 록축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 99" 무대에 "하드록의 전설" 딥 퍼플( Deep Purple )이 등장했다.

며칠간 계속된 폭우와 거센 바람이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딥 퍼플은 자연이 선사하는 갈채 쯤으로 여겼다.

자신들의 노래 " stormbringer "의 주인공이 된 듯 했다.

그들은 감전의 위험도 아랑곳 않고 마른 타월로 악기를 닦으며 열창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보컬 이언 길런이 관객들에게 "여러분 모두 미쳤어요. 믿을 수가 없군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곧 "어이,아저씨들도 마찬가지야"란 농담섞인 화답이 관중속에서 메아리쳤다.

반백의 나이가 된 딥 퍼플 멤버와 젊은 팬들은 이날 모두 나이를 잊어버렸다.

"폭풍속의 전설"이 이번에는 잠실벌로 옮겨진다.

창단 30주년 기념투어에 오른 딥 퍼플이 일본에 이은 기착지로 서울을 택했다.

다음달 2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 " hush "에서 " any fule kno that "에 이르는 그들 음악의 모든 것을 풀어놓는다.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러분 모두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미쳐볼까요"라고.

작년은 딥 퍼플에게 뜻깊은 한 해였다.

결성 30주년,재결성 15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

" perpendicular "(95년)에 이어 내놓은 앨범 " abandon "으로 다시 한번 저력을 과시했다.

앨범 제목도 "고질병인 멤버들간 불화는 날려버리고( abandon ) 딥 퍼플은 계속된다( a band-on )"는 상징을 담고 있다.

사실 딥 퍼플은 23년이란 긴 활동사를 갖고 있지만 8번이나 멤버가 교체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살아있는 기타의 전설 리치 블랙모어,초기 보컬 로드 에반스,70년대 딥 퍼플을 빛냈던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 등 이 그룹을 거쳐간 아티스트만 11명에 이른다.

이처럼 잦은 불화와 멤버교체는 작품의 압축미,일관된 음악적 지향을 찾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을 거쳐간 아티스트들은 딥 퍼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완성해 나갔다.

그룹 레인보우,화이트스네이크,알카트라즈 등을 결성해 세계 하드록계에 또다른 폭풍을 몰고왔던 것이다.

이들 밴드를 한데 묶어 "퍼플 패밀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딥 퍼플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반증한다.

현재 멤버(보컬 이언 길런,기타 스티브 모스,키보드 존 로드,베이스 로저 글로버,드럼 이언 페이스)는 95년 이후 꾸준한 팀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각 멤버들이 개인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오히려 팀의 결집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낳았다.

물론 창단멤버인 존 로드와 이언 페이스가 꿋꿋하게 딥 퍼플을 지탱해왔던 것도 큰 힘이 됐다.

어쨌든 딥 퍼플은 90년대에 적응한 70년대 밴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전의 파워를 유지하면서도 기존 모습에 안주하지 않는 시도가 팬들을 감격스럽게까지 하고 있다.

딥 퍼플은 요즘들어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주변을 다분히 관조적으로 노래한다.

앨범 " abandon "은 갈수록 도시화 디지털화되는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둬"라고 외치는 듯 하다.

사운드는 90년대 중반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의 가세로 정교한 맛을 더하고 있다.

리치 블랙모어 만큼 에너지가 넘치지는 않지만 모스의 기타가 만드는 탐미적인 분위기가 젊은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모스는 작곡에도 참여하고 있어 이런 사운드의 변화가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02)508-3252

장규호 기자 seinit@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