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의 황제'' 인터내셔널 페이퍼 ]

만년 무역수지 적자만 내던 한국 제지업이 지난해 3억6천만달러의 흑자를
내 화제다.

IMF 사태로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외국인 손에 넘어갔던 비운의 업종이
수출효자산업이 된 것이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 지난해 미주시장에 대한 수출이 대폭 늘어난 덕분이다.

제지업은 역시 미국이 세계 제일이다.

그 중에서도 뉴욕주 퍼처스에 본사를 둔 인터내셔널 페이퍼(IP)가 으뜸이다.

포천 순위 71위 기업으로서 세계 50개국 3백60여개 공장에 10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지난해 약 2천만t의 각종 종이와 펄프를 생산했다.

1백30개국에서 약 30조원의 매출을 올려 2천2백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냈다.

미국내에서만은 매출액 생산량 고용인력 등 모든 면에서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98개 제지 및 펄프업체가 5만8천여명의 직원으로
1천만t을 생산했으니 IP는 한국의 2배 규모다.

IP는 또한 미국내 3만여평방km, 뉴질랜드에 3천여평방km의 삼림도 갖고
있다.

남한의 3분의 1, 또는 강원도의 2배 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38조원 자산 가운데 삼림의 가치는 10%밖에 안된다.

설비자산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

IP는 지난달 31일 만 "1백2세"가 됐다.

1898년 미국 동북부 지역 17개 펄프 및 제지업체가 하나로 합쳐 탄생했다.

현 한국처럼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난립해 있던 당시 17개 업체가 하나로
뭉쳐 미국 신문종이시장의 60%를 점유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15년 후 캐나다산 수입종이에 대한 관세가 폐지되며 타격을 입었고,
1921~37년까지 오랜 기간 심각한 노사갈등을 빚으며 곤욕을 치렀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포장재와 운반용기용 골판지를 만들어내 히트를
쳤고, 우유 등 액체용 용기와 건축용 하드보드를 잇따라 발명했다.

40년대엔 실업의 아픔 속에 노동계의 호전성이 많이 가신데다 세계대전
특수로 호시절을 구가했다.

이때 번 돈으로 세계로 진출, 50년대 후반에는 당시 벌써 현대적 다국적
기업이 됐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쳐 60년대 부동산개발회사와 의료기기메이커 등 온갖
잡다한 회사들을 인수, 문어발 경영에 탐닉하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그러다 70년대 오일쇼크를 먹고 몽땅 다 토해냈다.

IP의 최대 성장기는 역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종이 수요가 급증해 80년대 중반 50억달러
하던 매출액이 10년 후 4배가 됐다.

하지만 원자재(commodity) 사업이 늘 그러하듯 종이사업도 경기부침이 몹시
심해 이윤은 들쭉날쭉하다.

이에 IP는 이 기간중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한편 경기를 덜 타는 건축자재
와 화공품, 석유제품, 실리콘 피복제품 등 특수재 사업 육성에 진력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인터넷 확산과 전자종이 출현, 환경규제 강화, 개도국
제지업체들의 부상, 철제주택 선호성향의 증가 등으로 심사가 매우 불편하다.

실제로 주당 순이익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14%씩 줄었다.

뉴라운드와 관련, 종이 및 목재산업계 대표로서 지난해 8월 의회 청문회에
나섰던 존 T 딜론 회장 겸 사장의 연설이 독기로 가득 찼던 것도 이 때문
이다.

그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개도국의 폭발적 설비증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미국 기업에만 불리하게 돼 있는 미국내 각종 세제와
규제를 철폐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미국도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해 다른 나라들에 대해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높이 치든가 아니면 상대방의 장벽을 낮춰 놓으라고 정치인들
에게 목청을 높였다.

< 전문위원 shind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