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황제에서 정원사가 된 푸이처럼 사람의 팔자는 물론이고 말(언어)의
운명과 물건의 가치, 직업의 종류까지 몽땅 뒤바꾼다.

지금은 흔한 후추지만 12세기 유럽에선 무게당 값이 은과 같아 알갱이
하나씩을 세어 계산하는 귀중품이었다.

후추로 땅을 사거나 지참금을 지불했고, 부자를 "후추부대"라고 불렀다.

중세 유럽의 탐험 열기가 동양의 향료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알려진
일이지만 15세기까지 후추 한 부대는 사람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김승옥의 단편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성의 대가로 얻을 정도의 직업이던
버스차장이 사라지고, 75년 직업조사에서 서비스업종사자중 조리사 웨이터
다음으로 많던 가정부 또한 거의 없어진건 세월에 따른 직업의 명멸을
전해준다.

로마시대때 이미 농.수.임산물및 수공업제품 판매상과 칼갈고 장작패는
품팔이꾼등 1백92개의 직업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제표준직업 분류법이 생긴건
1949년 스위스에서 개최된 국제노동통계 전문가회의에서다.

우리나라는 60년 국세조사때 처음 체계적인 직업분류제를 택한 뒤 70년 국제
노동기구(ILO)의 국제표준직업 분류방법을 채택했다.

통계청이 7년만에 개정한 한국표준직업 분류에 따르면 치어걸 애완견미용사
웹마스터 펀드매니저 선물거래사 재활용품분류원등 2백14개의 새 직업이 등장
하고, 만담가 광대 식자원등은 사라졌다.

75년 조사 당시 사무직가운데 가장 많던 경리원 출납원도 회계사무원으로
통합됐다.

70년대만 해도 연예인이 지금처럼 직업인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컴퓨터직종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가 "10년안에 실리콘밸리는 쇠퇴하고 젊은 컴퓨터전문가가
수백만달러의 스톡옵션을 보장받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는 칼럼을 실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장차 어떤 직업이 뜰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컴퓨터가 해결할수 없는 건 요리와 출산뿐이라고 하거니와 10년 뒤 새롭게
부상할 직업이 무엇일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