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년 넘게 살던 집을 정리하고 낯선 곳으로 이사온 지 5개월째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1층이었고 뒷마당으로 다른 아파트의 축대가 있었기
때문에 한낮에도 늘 형광등을 켜두어야 했다.

이사온 첫날,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 때문에 잠에서 깼다.

지금은 성가시지만 겨울이 되면 거실 깊숙한 곳까지 햇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겨울 햇빛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우리 아파트는 동향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서먹서먹하게 눈인사만 나누었던 이웃집과도 왕래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이웃집 남자아이와 우리 딸아이가 동갑이었다.

내년이면 두 아이는 나란히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다.

가끔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면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물이 든 접시나
닭개장이 담긴 국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음식 솜씨가 신통치 않은 나는 매번 빈 그릇을 돌려주었다.

한번은 궁리를 하다가 중국집에서 배달해온 탕수육을 덜어 이웃집에 주었다.

아주머니는 접시에 담긴 탕수육을 받으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의 뜻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바로 중국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저씨는 서울 시내의 큰 중국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일 잘하는 음식은 부추 잡채라고 했다.

중국 음식은 센불에서 단번에 볶아내야 하기 때문에 주방은 불꽃이 내는
소리로 시끄러워, 이야기를 주고받으려면 고함을 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국 음식이라면 물릴 데로 물린 이웃집에 난 탕수육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도 자주 자장면을 시켜 먹어요.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만든 자장면을 먹어봐야 해요"라는 게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자장면집을 알려 주었다.

아주머니의 올해 바람은 싼값에 맛있는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작은
가게를 갖는 것이다.

그 음식점을 열면 첫번째 단골은 내가 될 것이다.

올 겨울, 따뜻한 햇볕은 갖지 못했지만 내겐 따뜻한 이웃이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