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음악계에 "장르의 혼합"과 "전통의 파괴", "디지털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기존의 범주로는 분류하기 힘든 음악형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실험음악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20세기말 테크노 열풍으로 이어진
예를 보면 이같은 트렌드가 주류음악으로 자리잡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퓨전(fusion)이나 크로스오버(crossover)라 부르던 흐름들이 음악내 여러
분야를 접목한 것이라면 "장르의 혼합"은 예술 전반으로 확대된 개념이다.

미술 문학 퍼포먼스와 음악이 결합되는 새로운 예술장르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 아트선재센터가 선보이는 "프랑스 인상주의와 음악", "베토벤과
조각가들"이 대표적인 예다.

미술과 문학작품이 음악과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해왔는지 콘서트를
통해 알아보는 자리다.

프로젝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먼저 미술작품을 해설하고 당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이같은 콘서트는 아직은 1차적인 연관성의 고리를
잡는 데 불과하지만 그 실험정신이 뻗어나갈 영역은 실로 넓다"고 말한다.

거꾸로 음악인들이 미술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발표한 비발디 "사계" 앨범은 독일
유명화가 그라우프너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밖에 음악과 전시를 결합한 "음향설치"를 비롯 음반으로 녹음하지 않고
공연 그 자체를 위한 음악만 추구하는 "퍼포먼스 음악" 등도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음악이 아니라 관객도 하나의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음악형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의 파괴"는 "개념의 파괴"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가장 아름다운 음이라고 하면 흔히 절대음을 생각했다.

근대에 발전된 화성법이 그 예다.

물론 불협화음을 강조하는 현대 작곡가들의 반란도 있었지만 새천년의
음악은 좀더 철학적이다.

예컨대 가장 좋은 음원을 담아 매끈하게 녹음한 CD가 최상의 음악은
아니라고 한다.

다소 거칠지만 다이내믹하고 삶의 진실이 녹아든 로테크(low-tech) 음악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푸른 펑크 벌레" "볼빨간 리믹스" 등 국내 인디밴드들이 추구하는 음악에서
그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

재정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잡음이 들어간 음질이 나쁜 음반들이
오히려 새로운 소리의 미학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은 하이테크(hi-tech)음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음악의 디지털화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음원이 디지털 전송망을 통해 공유되면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음악생산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반인들도 작곡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자리바꿈하고 비주류와 주류가 일상적으로 넘나드는
음악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미 스탠퍼드대,피리 음향 음악연구소 등이 컴퓨터음악을
연구하는 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황성호 교수 등이 컴퓨터음악의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컴퓨터음악제가 열려 국내 음악계에서도 그 가능성을 점쳐보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 장규호 기자 seinit@ 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