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동 <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

새 천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가 새 천년을 맞을 준비는 돼 있는가.

새 천년을 젊은이들이 끌고 나아갈 것이므로, 젊은 인재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를 보아 판단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종업원을 스무명 정도 둔 어느 벤처기업의 이야기다.

직원의 절반 정도는 갓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고 나머지 반은 대학을 휴학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거의 모두 스톡옵션을 갖고 있고 주말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이다.

결혼해 자녀를 둔 사장 자신도 몇주째 집에 가지 못하고 경쟁에서 지지 않고
이익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벤처기업이 일년 남짓한 사이에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설립됐다.

국민의 정부 벤처정책이 일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가끔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자금을 받는 가짜 벤처기업이 있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작년초 경제위기 하에서 벤처활성화 정책을 강구하던 상황에
비하면 기대 이상으로 벤처붐이 일어났다고 하겠다.

이에 따라 드디어 대기업 임직원들이 벤처기업으로 옮기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새천년을 앞두고 우리 경제에 대단히 경하할 만한 변화다.

안정된 높은 월급을 마다하고 망할 확률이 수십배 높은 벤처기업으로 일터를
옮기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해당되는 인재에게 일생일대의 결단일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대기업의
우위가 일부나마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에 맞추어 중소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를 만들겠다는
DJ노믹스가 성공하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기업측에서도 인재를 벤처에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스톡옵션제를
확대하는 등 보수와 승진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혈연 지연에 의한 정실인사가 줄어 들고 임원인사도 보다
객관화될 것이다.

스톡옵션을 받는 임직원의 수가 많아질수록 해당 기업의 경영 투명성도
높아질 것이다.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이익을 과소계상 하는 등의 부실 회계 관행도 줄어들
것이고, 지배주주가 회사 돈을 마음대로 빼내가는 것도 내부에서 견제하는
눈들 때문에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국민경제 관점에서 볼 때 스톡옵션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장려돼야
할 수단이다.

그런데 경제부처는 옵션 행사로부터의 소득에 대한 과세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경제와 사회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한데서 온 시기상조의 하책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시장경제에서 인적 자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부단히 점검하면서
적절한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인적 자원의 배분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금융자금의 배분보다 중요하다.

특히 지식기반 경제로 발전하리라고 예상되는 21세기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가 사회 각 부문에 골고루 퍼져 활용될 필요가 있다.

DJ노믹스의 올바른 처방으로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지만 이것으로 새 천년 경제발전을 위한 "사람"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수백년 케케묵은 사농공상의 관념이 살아 있다.

오늘도 각종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벤처인력의 몇 배에 해당되는 젊은이가
밤을 밝히고 있다.

그중의 대부분은 결국 소중한 몇 해를 허송하고 있다.

검사 판사 고급공무원 등을 비롯해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 주로 "사"자
붙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가장 우수한 대학생과 졸업생이 매달리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마셜이 이야기한 소위 준지대(quasi-rent)를 따기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불리한 위치에서 또는 기껏해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하면서
소득을 창출하려 한다.

반면 사자 붙는 직업은 경쟁을 최대한 배제하고 초과소득을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최근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변호사법 개정안에서 복수
변호사회 조항 등을 삭제한 것은 "사집단"이 이 사회에서 갖는 힘을
명명백백히 보여 주는 예이다.

새 천년을 앞두고 한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을 누가 하고 있는지,
수능시험 고득점을 한 수재가 자연과학이나 공학 등의 전공을 포기하고
고시 보기 위해 대학입시 재수를 하는 기막힌 일이 왜 1999년 말에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따지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4대개혁도 제대로 해야 하지만 교육개혁 사법개혁 부패척결
등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인재를 제대로 기르는 길을 강구하는 데 중지를 모을
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