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욱 < 해양수산개발 원장 >

내년도 한.일간 배타적경제수역(EEZ)내에서의 상호입어 문제를 놓고 한.일
어업협상이 막바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일 두나라의 수산장관회담에선 11월까지 실무협상을 마무리
짓고 2000년 1월 1일부터 양국 EEZ내 조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실무협상 타결이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기본적으로 협상실무자가 양국 어민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두나라 입장이 맞서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 어선의 일본 EEZ내 입어조건 완화요구에 일본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우리 어선들의 일본 EEZ내 어획쿼터는 14만9천t이지만 까다로운 입어
조건 때문에 실제 어획량은 쿼터의 3분의1에도 못미친다.

그래서 어민들은 쿼터량보다는 입어조건이 먼저 개선되길 바라고 있다.

둘째, 동해 중간수역에서 어족자원의 남획을 막기 위해 감시감독을 철저히
하자는 일본측의 "자원관리방안"에 한국이 반대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측이 신 한.일어업협정의 부속서에 따라 중간수역내 자원관리
조치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2000년 일본 EEZ내 입어를 허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독도가 포함된 중간수역에서의 어업자원 공동관리가
독도의 영유권을 훼손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일본 EEZ내 입어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간수역에서 정부차원의
공동자원관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대다수 해양법학자들은 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별개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독도를 둘러싼 국민적 정서가 매우 민감하고 또 일본도 지나치리만큼
이 문제에 집착하고 있어 협상이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것이 정말 어족자원의 보호라면 정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한.일어업협상이 협상실무자의 노력으로 다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말이 난다 해도 어업인들의 상실감은 여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협상의 내용이나 성과에 대해서도 이성적 판단보다는 잘못된 정보나
여론몰이로 감정적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올초 장관의 사임까지 몰고 왔던 "쌍끌이 어선"도 금년중 일본 EEZ내
에서의 조업실적이 전무하다는 점을 보면 오도된 정보에 의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 한.일어업협정은 지난94년 발효된 유엔 해양법협약에 기초하고 있다.

이 협약은 연안국의 2백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협약비준 1백32개국의 일원인 한.일 양국도 지난96년 각각 EEZ를
선포했다.

또 99년1월 신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으므로 입어권을 얻지못할 경우
타국 EEZ내에서의 어업이 불가능하게 됐다.

나라간 무역에 관해 WTO체제가 자리잡았듯이 바다 이용에 관한 한 EEZ체제가
국제적인 규범이 된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일어업실무협상도 사실은 한.일간 EEZ경계획정이
완전하게 이뤄지기 전까지 3년동안 잠정적으로 어업에 관한 질서를 정하기
위한 것이다.

수산업계나 어민들은 이 모든 변화를 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는 수십년을 일궈 오던 바다를 빼앗겼다는
분노와 상실감에 젖어 있다.

그래서 수산업계는 신 한.일어업협정을 무효화하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되물어 봐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기존의 연근해 어로관행으로 과연 우리 수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소형 기선저인망이나 장어 및 게 통발어업 등 자원남획형 어법은 이미
일본내 EEZ에서는 금지됐다.

그러나 우리 바다에서는 여전히 조업이 이뤄지고 있다.

또 양식광어나 우럭 등의 사료로 우리 연안의 어린 물고기들이 자라기도
전에 남획돼 어자원은 더욱 고갈되고 있다.

생활오수나 공장폐수, 그리고 증산위주의 수산정책으로 피폐해진 연안천해의
오염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렇게 보면 한.일어업협상 줄다리기는 한국 수산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과제에 비하면 그야말로 "병들어 죽을 지경인 사람의 다리에 난 종기"에
불과하다.

우리 수산업에 관한한 한.일어업협상을 통해 고기 몇t 더 잡는 것보다
과잉어선세력의 감축과 조업구역 재편, 그리고 연안어족자원 보호를 위한
국민적 합의와 강력한 행정체제 구축이 더 절실하다.

< jolee@suji.km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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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영국 웨일스대 해운경제학 박사
<>해양수산개발원 항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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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