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환란 2주년을 보내며 .. 김병주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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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주 < 서강대 교수 / 경제학 >
며칠전 서울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금융을 받아들인지 만 2년 되는 날
국제금융계 거물인사들을 초청해 환란 극복을 자축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근래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외국인 투자자금도 속속 유입되고 있어
한은이 외평채를 팔아 달러를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서 12월 3일 현재 가용 외환보유고가 7백10억4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수준이라 한다.
잔치판 벌리는데도 다수의 국민이 찜찜한 느낌을 갖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때 영국 등 선진국은 외환위기를 당했지만 위기극복 후 자축행사를 열지
않았다.
가용 외환보유고가 환란 때보다 몇 배 늘었지만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시장
에서 차입할 때 부담하는 가산금리는 아직도 리보(Libor)플러스 1.5%포인트
이상으로 위기 전보다 몇 배나 높은 수준에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도 회복에 그만큼 큰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외채만기구조가 크게 개선됐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흐름 물꼬를 관리하는
틀을 새로 짜는 국제금융설계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수준의
외환보유고라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환란은 대부분의 경우 단순히 외환시장의 일시적 수급불균형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국내금융기관의 부실화, 대기업 도산 등 실물경제의 붕괴조짐,
정부의 정책운용 능력 미숙 등 고질적 질환이 깊어져 겉으로 증세가 내보이면
, 취약한 사냥감으로 낌새를 챈 독수리떼의 공격으로 위기국면으로 치닫는다.
97년 한국의 환란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태가 아니었다.
수년간 누적된 경제, 정치, 사회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사후적으로 보면 환란을 전후한 시점에서 외국자본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인과귀속의 열쇠고리는 역시 국내경제의 취약성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IMF 지원금융 부대조건을 받아들인 정부의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이른바 "워싱턴 합의"에 따른 정책처방은 고강도의 긴축적 재정금융운용과
폭넓은 구조조정을 포괄했다.
당시 정부가 말레이시아의 선택을 따르지 않은 것은 경제구조의 차이,
국가부도와의 득실계산 등에서 IMF 금융과 처방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다음 세 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즈"가 튼튼하기 때문에
환란은 없다고 주장해온 관변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둘째, 대선을 앞둔 시기에 야당후보 지지세력에게는 환란은 당시 집권여당의
총체적 실정과 무능력을 압축 표현하는 최고의 표몰이 호재여서 IMF처방을
근본적으로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IMF 사태가 있었어도 득표차가 30여만표에 불과했음을 보면 당시 야권의
행운이었다.
IMF처방은 근본적으로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셋째, 한국경제를 관료의 과잉규제에서 풀어주는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들의
입장에서도 IMF사태는 놓칠 수 없는 찬스였다.
국내 이익집단간의 이해상충으로 추진 불가능했던 과제들이 IMF의 권고로
처리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무엇보다도 환란 이전 국내 논자들의 국제금융지식은 지극히 얕았다.
환란의 충격속에 생소한 전문용어 홍수에 대다수의 심경은 참담했었다.
환란 이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
환란 이전부터 진행돼온 일련의 사태, 즉 대기업 부실, 노동법 개정파동,
금융기관 부실화, 정치자금 비자금 파문 등과 현정부 출범후 발생한 새로운
사건들 가운데 제대로 매듭지어진 것이 무엇인가?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그 중 많이 진척되었으나 대우그룹 부실 채권 뒤처리
가 남아 당국의 고강도 조치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 초가 여전히 불안하다.
대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지만 아직 크게 미흡하다.
노동시장의 핵심 쟁점인 전임노조 임금지급 문제에 정부 여당이 다시 변심한
듯 보인다.
과잉 규제로 경제 위기의 멀고 가까운 원인을 제공한 관료들이 외환 극복의
공로자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정치권의 행동양식에는 변화가 없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제금융통 사카키바라는 상대방의 터치다운 직전에
골 포스트를 뒤로 물리는 미국정부의 협상자세를 말한다.
그러나 워싱턴 합의에 줄곧 반대의견을 펴온 스티글리츠 세계은행 부총재
마저 금융 기업 등 각 분야의 폭넓은 개혁의 지속을 당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멕시코 경험이 한국에서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7일자 ).
며칠전 서울에서 큰 잔치가 열렸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금융을 받아들인지 만 2년 되는 날
국제금융계 거물인사들을 초청해 환란 극복을 자축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근래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외국인 투자자금도 속속 유입되고 있어
한은이 외평채를 팔아 달러를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서 12월 3일 현재 가용 외환보유고가 7백10억4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수준이라 한다.
잔치판 벌리는데도 다수의 국민이 찜찜한 느낌을 갖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때 영국 등 선진국은 외환위기를 당했지만 위기극복 후 자축행사를 열지
않았다.
가용 외환보유고가 환란 때보다 몇 배 늘었지만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시장
에서 차입할 때 부담하는 가산금리는 아직도 리보(Libor)플러스 1.5%포인트
이상으로 위기 전보다 몇 배나 높은 수준에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도 회복에 그만큼 큰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외채만기구조가 크게 개선됐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흐름 물꼬를 관리하는
틀을 새로 짜는 국제금융설계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수준의
외환보유고라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환란은 대부분의 경우 단순히 외환시장의 일시적 수급불균형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국내금융기관의 부실화, 대기업 도산 등 실물경제의 붕괴조짐,
정부의 정책운용 능력 미숙 등 고질적 질환이 깊어져 겉으로 증세가 내보이면
, 취약한 사냥감으로 낌새를 챈 독수리떼의 공격으로 위기국면으로 치닫는다.
97년 한국의 환란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사태가 아니었다.
수년간 누적된 경제, 정치, 사회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사후적으로 보면 환란을 전후한 시점에서 외국자본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인과귀속의 열쇠고리는 역시 국내경제의 취약성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IMF 지원금융 부대조건을 받아들인 정부의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이른바 "워싱턴 합의"에 따른 정책처방은 고강도의 긴축적 재정금융운용과
폭넓은 구조조정을 포괄했다.
당시 정부가 말레이시아의 선택을 따르지 않은 것은 경제구조의 차이,
국가부도와의 득실계산 등에서 IMF 금융과 처방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다음 세 가지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즈"가 튼튼하기 때문에
환란은 없다고 주장해온 관변 이코노미스트들은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둘째, 대선을 앞둔 시기에 야당후보 지지세력에게는 환란은 당시 집권여당의
총체적 실정과 무능력을 압축 표현하는 최고의 표몰이 호재여서 IMF처방을
근본적으로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IMF 사태가 있었어도 득표차가 30여만표에 불과했음을 보면 당시 야권의
행운이었다.
IMF처방은 근본적으로 거부할 입장이 아니었다.
셋째, 한국경제를 관료의 과잉규제에서 풀어주는 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들의
입장에서도 IMF사태는 놓칠 수 없는 찬스였다.
국내 이익집단간의 이해상충으로 추진 불가능했던 과제들이 IMF의 권고로
처리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무엇보다도 환란 이전 국내 논자들의 국제금융지식은 지극히 얕았다.
환란의 충격속에 생소한 전문용어 홍수에 대다수의 심경은 참담했었다.
환란 이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나?
환란 이전부터 진행돼온 일련의 사태, 즉 대기업 부실, 노동법 개정파동,
금융기관 부실화, 정치자금 비자금 파문 등과 현정부 출범후 발생한 새로운
사건들 가운데 제대로 매듭지어진 것이 무엇인가?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그 중 많이 진척되었으나 대우그룹 부실 채권 뒤처리
가 남아 당국의 고강도 조치에도 불구하고 내년 2월 초가 여전히 불안하다.
대기업 부문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지만 아직 크게 미흡하다.
노동시장의 핵심 쟁점인 전임노조 임금지급 문제에 정부 여당이 다시 변심한
듯 보인다.
과잉 규제로 경제 위기의 멀고 가까운 원인을 제공한 관료들이 외환 극복의
공로자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정치권의 행동양식에는 변화가 없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제금융통 사카키바라는 상대방의 터치다운 직전에
골 포스트를 뒤로 물리는 미국정부의 협상자세를 말한다.
그러나 워싱턴 합의에 줄곧 반대의견을 펴온 스티글리츠 세계은행 부총재
마저 금융 기업 등 각 분야의 폭넓은 개혁의 지속을 당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멕시코 경험이 한국에서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