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미국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하는 것이 한국경제학 발전의 길이다"

"응용지식이나 현장지식만을 내세우는 최근의 신지식 운동은 잘못된 문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3일 서강대 국제대학원이 한국경제신문과 삼성경제연구소 후원으로 가진
"IMF 경제위기와 한국경제학의 반성 및 과제" 심포지엄에서는 요즘 한국경제
학계의 풍토에 대해 이같은 비판과 자성의 소리가 쏟아졌다.

<> 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한 나라의 경제는 시장이 조정하는 것 외에도
제도와 정책의 조정에 영향받는다.

제도학파나 조정학파 신경제론 등 다양한 경제학의 조류를 받아들여 제도와
역사에 대한 연구를 한국경제학에 융합시켜야 한다.

한국경제학계는 학문적 싸움이 없어 활기가 없고 기술적인 분석에 빠져
근시안적인 연구에 매몰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현실에 대한 참된 진단과 처방이라는 역할을 외국의 석학들에게
내 준 것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의 학문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

인문과 자연분야에 관한 폭넓은 교양이 부족하고 프로젝트 따기에 여념이
없는 학자들이 있다.

대학이 자기 졸업생만 채용하고 교수가 학문을 정.관계에 진출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경향도 보인다.

대학재단 역시 대학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다.

대학을 사유물시하여 가부장적인 세습제로 운영하는 재단은 "교육상인"에
불과하다.

한국경제학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빈곤문제를 연구하는 "새 정치경제학"에
있다.

오늘날 대중빈곤 외에도 기업빈곤(기업도산) 국가빈곤(재정파탄) 국민경제적
빈곤(국가지불정지) 세계빈곤(국가간의 빈부격차)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옛 소련은 대중빈곤만 생각하고 기업빈곤을 소홀히 해 결국 붕괴했다.

균형잡히고 참신한 접근 방법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여 가난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후학들이 구상해 주길 바란다.

<> 이지순 서울대 교수 =현재의 한국경제학계는 "위기" 상태다.

기초학문을 경시하는 풍조가 경제학을 고사시킬 가능성이 있다.

우수한 재원이 배우기 쉽고 장학금도 많으며 취직에도 유리한 법학부와
경영학부에 몰려 경제학부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지적수준이 많이 낮아졌다.

경영학부와 법학부를 전문대학원으로 승격시키고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충실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있어야 한다.

또 경제학에 경영학이나 법학의 요소를 가미해 경제학을 실용적으로 변모
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기업의 경제학, 법의 경제학, 행정의
경제학 등 "유용한" 경제학 과목을 신설할 계획이다.

경제학의 여러 분야중에서도 특히 기업에 관한 연구가 가장 부족하다.

기업활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경제학 교수 자체가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거나 잘 모르며 나아가
기업에 대해 근거없는 반감을 가진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교육받은 학생들은 기업현실이나 한국경제의 현실에
대해 문외한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성과를 높이는 방법은 경제학자들간의 직장 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에 경제학 정교수 자리가 나면 부교수중에서 선택해 채우고 KDI
(한국개발연구원)에 선임연구원 자리가 나면 그 자리를 KDI 연구원중에서
충원하는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경제학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학자들에 대한 주기적인 재평가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 신지식인 운동 비판 =이날 김 교수와 이 교수는 이른바 "신지식인"
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교육개혁을 통해 충실한 교양교육이 모든 학문 연구의 토대가
돼야 한다"며 "응용지식이나 현장지식을 내세우는 최근의 신지식운동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진정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명예나 금전적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조용히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기를 원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묵묵히 연구하는 학자들은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구지식인이라고 매도하고
돈 잘버는 사람을 신지식인이라고 추켜 세우는 반지성적 사회분위기는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런 사회 분위기는 당장 돈이 되는 응용학문에만 집중 투자하고
기초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을 "물먹이는" 대학행정에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 박민하 기자 hahaha@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