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 끝에 대부분 정부안을 훨씬 웃도는 수정안을 의결, 예산결산특별
위원회로 넘겼다는 소식이다.
건설교통위와 보건복지위 및 교육위 등 3개 상임위의 증액분만 2조원을
넘어서 92조9천억원의 정부안이 96조원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나마 과학기술정보통신위와 통일외교통상위가 정부안보다 다소 삭감하고
노동위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증액한 사업들은 득표에 도움이 되는 도로건설, 저소득층 생활보장, 퇴직
수당보전,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보조 등으로 선심성이 뚜렷하다.
가급적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는 여당이나 대폭 삭감을 호언한 야당의
당초 방침과도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상임위가 아니라 선심위라는 비아냥을
탓할 수만도 없다는 느낌이다.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채권을 발행하고 재정을 쏟아
부은 탓에 나라 빚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올 연말의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3.1%인 1백11조5천억원에 달한게 된다.
이는 젖먹이까지 포함해 국민 1인당 2백36만원으로, 4인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1천만원에 이른다.
이밖에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채무액도 올 연말 94조4천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국가채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담팀을 만들겠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한번 늘어난 빚은 여간해서 줄이기 힘들다.
지난 해부터 흑자로 돌아선 미국의 재정도 30년 가까이 적자에 허덕였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예산을 짤 때부터 증가율을 낮추고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국채부터 갚아야 한다.
마땅히 눈에 불을 켜고 정부안에서 불요불급한 사업을 찾아내 삭감해야 할
의원들이 거꾸로 증액에 앞장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도가 아니다.
국회에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을 준 취지는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알뜰하게
쓰이는지 잘 감시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해마다 정치적 흥정에 따라 경제적 효율과 합리성을 깨뜨리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추경예산의 편성요건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당정협의 과정에서 완화
하는 방향으로 꺾인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의원들은 지금 당장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57조를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국민의 혈세를 아끼겠다는 각오도 새롭게 해줬으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