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에 MBO(Management Buy Out)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MBO는 전문경영인이나 직원들에게 회사 전체 또는 특정 사업부문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

구조조정으로 자회사나 사업부문을 정리하고자 할 때 이같은 방식이 이용
된다.

전문경영인이나 직원들은 "조금만 조직을 개선하면 분명히 이익이 나는데,
직접 운영해 볼까"하는 생각을 한다.

오너는 그러나 "이렇게 적자만 나는 걸 뭐하러 붙들고 있어, 털어버리는게
낫지"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때 양측 사이에 고수익을 노리는 전문 펀드회사가 끼어들면 MBO는 성사
된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기업을 외국회사에 파는 것보다 차라리 함께 근무하던
사람에게 넘기는 MBO를 "일본식" 매수합병에 적합한 형태로 보려는 경향이
일본 사회에 있다고 진단한다.

"우리가 공동으로 진단약사업부문을 매수하겠습니다"

지난해 6월 석유정제회사인 도엔(동연)의 진단약사업실장 야스모토(52)는
회사 상사들에게 태연히 이런 말을 꺼냈다.

이 한마디로 매도자(도엔) 매수자(진단약사업실의 직원일동) 매매물건(진단
약사업부문)이 한 회사에 공존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일본의 석유화학업계는 정부의 규제완화로 가중되는 경쟁속에서 영업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도엔의 대주주(미국의 석유메이저)들은 효율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사내
역량을 핵심사업 부문으로 집중시키도록 요구해 왔다.

회사는 96년부터 경영혁신에 나섰다.

도엔의 생명공학 신규사업의 하나였던 진단약사업실은 이때 폐쇄가 결정
됐다.

별도로 경영상태를 따지면 2억엔정도의 흑자가 나고 있었지만 도엔의 주력
부문과 무관하다는게 폐쇄를 결정한 이유였다.

특허나 기술의 상품화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한 야스모토 실장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돈이었다.

연간 4억엔이상의 운전자금과 최소한 수억엔에 달하는 매수자금이 필요했다.

그는 금융기관을 전전했다.

은행들은 대개 담보를 요구할 뿐이었다.

다시 벤처캐피털을 찾아다녔다.

그나마 기술력의 담보가치를 인정해 주는 등 사정은 나았지만 모든 자금을
조달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야스모토 실장은 매수의사를 밝힌지 1년이상 흐른 지난 9월 (주)첨단생명
과학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었다.

하루 아침에 사장이 된 야스모토가 10%를 출자했으며 과거 진단약사업실에
근무하던 사원들이 총 33.1%의 자금을 대 회사를 출범시킨 것이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야스모토 실장의 경우는 MBO가 아니라 EBO(Employment
Buy Out.종업원에 의한 매수)라고 불린다.

그러나 넓게 보면 이는 MBO와 같은 범주이며 이같은 MBO 사례가 최근 일본
에서 크게 늘고 있다.

ICS 국제문화교육센터 잡크리에이트 디스리퍼블리서 스미토모아리스 등
최근 1년간 10여개의 회사가 MBO를 통해 신설됐다.

이 가운데는 자회사를 사들인 경우도 있으며 사업부문이 독립한 경우도
있다.

또 도산한 회사를 종업원들이 매수한 사례도 있다.

사실 MBO를 원하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았으나 일본 금융기관들이 담보를
요구하는 구태의연한 자세를 보여 성사되지 못하곤 했다.

창업정신을 높이 사는 분위기도 부족했다.

이같은 일본금융기관의 풍토로 인해 일본에서 MBO를 지원하는 전문금융기관
(MBO펀드)은 외국계가 많다.

MBO 펀드인 유니존캐피털은 최근 1년간 9건에 달하는 제휴요청을 받았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MBO를 성사시켜 달라"는 외국 금융기관이나
벤처캐피털들의 요청이었다.

왜 이렇게 MBO에 관심을 두는 외국금융기관이 많을까.

전문가들은 MBO 투자가 일본에서 하나의 대체투자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투자에서 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이같은
분야로 자금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MBO는 투자기관들의 입장에서는 미공개주식에 대한 투자와 마찬가지다.

상장기업들의 건전성은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비상장기업의 그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건전성 확인이 덜된 기업에 투자하는 리스크를 극복하면 비교할 수
없는 고수익을 얻게 된다.

< 박재림 기자 tree@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