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국채매입이라는 카드를 뽑았다.

한은은 그동안 "금융시장이 불안할 경우 국채를 직접 사들이겠다"는 방침을
수시로 밝혀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말로만 하는 립서비스에 그쳤다.

이번에는 행동에 나섰다.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1조원규모의 국채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직접
매입키로 한 것.

한은은 당초 이날 입찰계획이 없었으나 오후 2시이후부터 금리가 급등하자
부랴부랴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초기대응을 잘해야만 시장 불안심리를 불식할 수 있다는게 과거의 뼈아픈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와는 달리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이날의 경쟁입찰을 통해선 1조원 전액이 유찰됐다.

한은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한은은 국채매입을 유찰시킨 이유에 대해 "입찰에 참가한 금융기관들이
시장금리보다 크게 낮은 금리로 응찰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1조원 입찰에 응찰규모는 1조9천1백억원에 달했지만 증권사등 일부 금융기관
들은 연 7.8% 수준의 턱없이 낮은 금리를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이날 국고채 3년짜리 금리가 8.45%였던 것을 감안하면 0.65%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유찰사태로 인해 금융기관들은 혼란을 겪기도 했으나 한은은 일단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금리인하)를 보내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자평했다.

한은은 금리가 불안할 경우 9일중 다시 입찰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천명
했다.

한은이 장기금리를 낮추겠다고 직접 나선데는 여러가지 속사정이 있다.

박철 한은 부총재보는 "현재 금융시장 여건을 고려할 때 시장금리 상승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못박았다.

금리 상승은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게 한은의 판단
이다.

금리가 오르면 투신사의 공사채형 펀드는 수익률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채 직매입은 채권시장안정기금에 출자하길 꺼리는 은행들을 독려
하는 효과도 있다.

은행들, 특히 외국계 금융기관이 대주주인 일부 은행들의 경우 채권시장안정
기금 출자에 난색을 보여 왔던게 사실이다.

정부는 채권시장안정기금 규모를 20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액한다는 입장
이지만 은행들은 쉽사리 동조하지 않고 있다.

기금의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은행들 입장에선 자금운용상의 불일치
(미스매치)도 심각한 문제다.

채권안정기금에 출자하는 것은 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것인데 반해 조달되는
자금은 대부분 단기라는게 은행들의 고민이다.

한은은 잔존만기가 1~2년 남은 장기국채를 사주면 은행들의 자금운용 부담이
덜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환매사태로 인해 만약 투신사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투신사로부터도 국채를 사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규모는 제한하지 않고 있다.

무제한으로 사들인다는게 한은의 방침이다.

최종대부자(last resort)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같은 직매입은 적지 않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국채를 직접 사들이면 본원통화는 그대로 풀린다.

가뜩이나 걱정되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엎친데 덮친 격이다.

금리왜곡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시장관계자들은 향후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데다 물가불안마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국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관리하는건 사후적으로 보다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장은 금리를 끌어내려 환매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지만 이같은 조치를
계속 끌고 갈순 없을 것이란게 시장관계자들의 분석이다.

< 이성태 기자 stee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