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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통독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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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는 1989년 5월2일 오스트리아로 가는 국경의 차단시설을 제거했다.

    7월엔 동독인들의 여권에 임시출국허가증을 붙여줬다.

    동독정부와의 협정이 문제되자 8월19일 국경도시 쇼프론에서 헝가리
    자유민주연합 주최 범유럽피크닉을 개최, 행사도중 동독난민들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갈수 있도록 국경의 문을 열어줬다.

    헝가리의 이같은 도움은 베를린장벽 붕괴의 계기가 된 동독인들의 엑소도스
    를 촉발시켜 10월 3일 체코 프라하의 서독대사관에는 8천명의 난민이 모여
    서독행을 요구했다.

    결국 11월 9일 콜총리가 폴란드를 방문중일때 동독공산당의 귄터 샤보프스키
    는 누구든지 동독을 자유롭게 떠나도 좋다는 여행관련 임시규정을 공포했다.

    밤 10시쯤 군중의 힘에 밀려 베를린 장벽 통로는 완전개방됐다.

    이로써 61년 동독정부가 쌓은 높이 2.5-4m 두께 16cm의 콘크리트벽 1백65km
    는 사라졌다.

    현재 베를린 한복판 부란덴부르크문 앞엔 장벽의 존재를 알리는 벽돌선만
    남아있고 담장주변 기념품점에선 조약돌 크기의 콘크리트조각이 인기상품으로
    팔린다.

    그토록 놀랍던 베를린장벽 붕괴소식이 전해진지 어느새 10년.

    독일정부는 9일 베를린에서 당시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었던 헬무트 콜
    전총리,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 미하힐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을 초대,
    대규모 기념식을 갖고 그날의 감격을 되새긴다고 한다.

    독일국민 85%가 "통일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후유증은 심각하다.

    10년동안 동독에 국내총생산(GDP)의 4%,1조마르크(약6백조원) 이상을
    투입했음에도 동독지역 실업률은 91년 10.3%에서 최근 17.6%로 늘었고 구
    동독인들의 가계소득은 서독지역 사람들의 3분의2밖에 안된다.

    구동독인들 사이엔 오스탈기(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의 노스탈지어의
    합성어)가 생겼다고 할 정도다.

    통일의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험난한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발행인 테오 좀머는 반세기 가까이 분단된
    두 독일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같아질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빠르고 값싼
    해결책도 없다고 얘기한다.

    통일은 최소 한세대동안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수십년동안 역사적인 "반제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급함은 최악의 행동지침"이라는 좀머의 말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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