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만큼 불행한 동물이 있을까.

상황에 따라 자신의 정체를 달리하는 "이중 인격자"에게 흔히 붙는
별명이다.

때로는 "흡혈귀"로 때로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지는 박쥐.

포유류중 유일하게 날수 있는 이 동물은 분명 "저평가"돼 있다.

SBS가 창사 특집으로 마련한 2부작 자연다큐 "한국의 박쥐"(서유정 연출,
9~10일 오후 10시55분)는 박쥐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는 프로그램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박쥐의 생태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제작진은 박쥐를 카메라에 담기위해 지난 2월부터 전국 1백20여개의 동굴과
폐광 지역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감내했다.

칠흑같은 동굴을 탐사하다 6mm 소형 카메라를 3대나 망가뜨렸고 스태프 중
한명은 어둠 속에서 랜턴 전원이 떨어진채 고립돼 일행의 구조를 기다리기도
했다.

고생 끝에 제작진은 희귀종인 토끼박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평남 졸망박쥐, 황금박쥐로 흔히 알려진 붉은박쥐 등 좀체 눈에 띄지 않는
박쥐를 포함해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5종 가운데 모두
17종을 영상에 담았다.

프로그램은 박쥐의 신비로운 생태를 다각도로 소개한다.

거꾸로 매달린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방법, 동굴 속에서 어떻게 밤이
왔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날아가는지 등을 보여준다.

여러 새끼중 한마리만 선택되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냉엄한 자연의 법칙이나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날아다니는 비행 방법도 알려준다.

시청자들은 인간의 손에 떠밀려 보금자리를 잃어가는 박쥐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목격할수 있다.

제작진은 동굴을 침범당해 폐광으로 쫓겨가는 박쥐가 늘어나면서 박쥐의
체내 중금속 오염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고발한다.

구리 폐광에서 발견된 일부 박쥐들에서 구리, 납 등이 치명적인 수준의
농도로 검출된 것.

최근 박쥐가 약재로 남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수
없다.

연출을 맡은 서PD는 "국내의 박쥐 개체수가 최근들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작 과정에서 알게됐다"면서 "그동안 소외 받아오던 박쥐에
대한 관심이 이번 기회에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박해영 기자 bono@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