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 경제학 >

국제경제 회복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경제정책기조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체로 재경부는 확장적 정책기조 유지를,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은 물가오름세를 대비한 신중론을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최근 KDI의 경제전망발표에 따르면 하반기에도 국내총생산(GDP)이 소비
설비투자 등 국내수요와 해외수요(수출)의 호조에 힘입어 연간 9.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지난해 5.8%나 움츠러들었던 국내경기가 기지개를 켜는 반등세의
영향을 감안해도 올해초 모든 전문기관의 예상치(대체로 5%대)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소비자물가는 연간 0.8% 오르는데 머물고, 경상수지는 2백24억달러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았다.

이어 내년 GDP성장률은 5.8%로 수그러들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3.2%로 크게 오를 것이고 경상수지 흑자폭은 1백23억달러로
작년수준에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경제연구기관들의 전망치들도 대동소이하다.

경제전망은 유사하지만 내리는 정책처방이 크게 엇갈려 한국경제의 진로가
혼미해 보인다.

재경부는 저금리와 재정확대를 기간으로 하는 현재의 확장정책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한은과 KDI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계하면서 자칫 민간
부문에서 구조조정 추진을 늦출세라 우려해 조심스럽게 긴축론을 거론하고
나섰다.

KDI측 견해를 간추리면 이러하다.

IMF사태이후 경제전체의 총공급능력에 총수요가 못미치는 디플레이션 갭이
존재해 물가상승압력 염려가 없었다.

올해들어 경기회복세에 따라 총수요가 총공급능력을 웃도는 인플레이션
갭으로 반전되는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7월중 임금이 대기업 부문을 중심으로 작년 동기 대비 12.0%나 오르는 급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조짐이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 나는 등 자산가격이 회복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제원유가격이 가파르게 인상됐다.

98년 하반기부터 국내의 신용경색 해소를 위해 돈이 크게 풀린데다 최근에는
시중 통화유통속도마저 가속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킬 수 있는 불씨가 이곳 저곳에 준비돼 있는 형세다.

몇주전 한국은행 총재가 방미도중 통화긴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주가
폭락의 주범이 됐다고 비난받았지만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 총재
입장에서 안할 말을 한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우사태등으로 극도로 예민해진 시장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을 책잡을수 있고, 항시 완곡하게 표현하고 입이 무거워야한다는 신분이
문제였을 따름이다.

KDI는 자칫 국민경제 각부문의 구조조정작업이 지연되거나 그 필요성이
망각되지 않도록 재정부문에서는 과감한 긴축, 통화부문에서는 조심스런
긴축으로 정책기조를 바꿀것을 건의하고 있다.

특히 경기상승추세가 지속될 경우 단기금리의 점진적 인상을 주장한다.

반면 재경부는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가장 광범한 통화총량지표인 M3증가율이 13%에서 10%대로 낮아지고 있고
앞으로 금융기관 건전성기준이 강화되면 대출신용공여에 제동이 걸릴것으로
본다.

그간 노동시장 유연성이 제고돼 노조가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할
것으로 본다.

이래저래 내년도 물가오름세 우려는 기우라고 일축한다.

더구나 대우와 투신사 구조조정의 부담비용을 고려하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하고 통화긴축은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에서 간추려 보인 엇갈린 견해차이를 보면서 우리는 재경부의 희망적
진단과 느긋한 처방에 경계하게 된다.

IMF사태후 한국경제 회생에 기여해온 해외 요인들이 불투명하거나 소멸됐다.

원유수입대금을 크게 덜어줘 경상수지 흑자폭을 늘려주었던 저유가추세가
OPEC 담합으로 사라졌다.

17년간 전례없는 장기 호경기를 누리며 세계경기를 지탱해온 미국경제가
근래 자산시장의 과열로 향후 신장세가 한풀 꺾일 공산이 크다.

개인저축률이 마이너스행진을 계속해 불안하다.

안으로 굽어드는 유럽연합(EU)시장이나 아직 침체국면을 떨치지 못한 일본
시장이 미국시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내 노동시장 유동성이 제고되었다지만, 방한 때 리콴유 전총리가 지적
했듯이 공기업 부문과 대기업 부문에는 세계적으로 소문난 강성노조가
건재하다.

최근 5%대로 크게 낮아진 실업률과 내년 봄 총선을 이들의 위세가 임금
대폭인상으로 관철시킬 기세다.

한국경제위기가 복합구조임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 사회 정치등 모든 부문에 문제들이 아직도 상당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인의 기억상실증은 벌써 IMF사태의 원인을 망각하고 있다.

경제주체 모두의 흥청망청이 주범이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