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 바네빅 ABB 비상근 이사회 회장은 "우리나라 재벌기업이 세계 최고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2,3개 정도의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2,23일 이틀간 서울 힐튼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국제자문단회의에 참석한 바네빅 회장은 한국기업은 사업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자문단 공식행사를 마친후 출국 직전 그를 만나 기업 구조조정 철학과
조직운영 전략 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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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중공업 민영화과정에
참여할 계획은 있습니까.

<> 바네빅 회장 =ABB뿐 아니라 GE 샌드빅 등 대부분의 회사들이 한중을
주의깊게 지켜 보고 있지요.

ABB의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말할 수 없지만 ABB는 한중과 계속 협력 관계를
맺길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전소 보일러 및 산업용 증기터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발전설비를 한중과 합치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한곳에 집중하면 그만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발전설비 통합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은데 인수합병은 어떻게
추진하는게 바람직한가요.

<> 바네빅 회장 =통합 협상은 항상 어렵기 마련이지요.

신속히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다소간 어려움이 있어도 미래를 염두에 둔 사고로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잃는 것도 있고 반면에 얻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새 것을 얻는 이점을 생각하고 인수.합병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 87년 ABB(스웨덴 아세아사와 스위스 BBC)가 합병할 때도 18개월만에
모든 합병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하지요.

재벌의 구조조정을 얘기하면서 실업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구조조정을
못하게 됩니다.

- 우리 기업은 부채비율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핵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바네빅 회장 =정부가 직접 민간기업의 경영에 직접 간섭하는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현대는 삼성 혹은 LG와 서로 다른 사업 전망(Outlook)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기업들이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룰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길 원하거나 자산을 취득하길 원한다면 기업은 특정사업
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차대조표도 개선할 필요가 있지요.

재벌 오너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자면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선 한곳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객들은 불확실성을 꺼려 합니다.

-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데 김
회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바네빅 회장 =대우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우중 회장은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호주머니보다 항상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실패한 경영인이나 재앙의 화신으로 매도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 회장은 파키스탄 루마니아 폴란드 등 세계 곳곳에 "한국"을 세운 공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재벌과 같이 대우도 변할 필요가 있었던 점은 인정합니다.

특히 국내외 채권단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큰 딜을 단시일내 성사시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미국의 GM과 대우자동차간 딜이 성공했다면 대우의 신용은 물론
한국 전체의 신용까지 한단계 높아졌겠죠.

- 지난 96년 능률협회가 선정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선정됐는데
수상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 바네빅 회장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독특한 기업행태와 조직문화 때문
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글로벌 세계에서는 여러 문화를 포용하면서 분권화된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ABB의 본사 조직은 현대나 삼성에 비해 훨씬 적답니다.(바네빅 회장은 87년
합병이후 스위스 본사 조직을 2천명에서 2백명이하로 줄였다)

우리는 전세계 조직을 매트리스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매트리스 조직이란 사업영역과 지역을 독립적인 차원으로 상호 교차시켜
양립시킨 것이지요.

글로벌 대기업의 통합이점과 현지화된 지역회사의 효과 모두를 살리자는
취지이지요.

- 매트릭스 조직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습니까.

<> 바네빅 회장 =글로벌과 현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조직형태입니다.

ABB는 효율적인 중앙 통제와 분권화를 동시에 추진해 왔습니다.

이번에 준공한 천안공장은 누가 봐도 한국 기업이 분명합니다.

삼성과 다를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이점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ABB 기업과 경험을 서로 교환할 수 있고 부품을 글로벌 소싱할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 기술을 싸게 들여올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 외국 기업들중에는 한국이 사업하기 어려운 국가라고 지적하기도
하는데요.

<> 바네빅 회장 =한국은 예전에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비춰졌지요.

그러나 지금 한창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고 재벌도 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변화가 옳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좋은 인식을 갖고 돌아가는 만큼 한국의 변화를 여러 기업에 알릴 계획
입니다.

<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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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시 바네빅 회장 이력 ]

<> 41년 스웨덴 출생
<> 64년 스웨덴 고텐부르크대 석사
<> 66년 미국 스탠포드대
<> 66년 스웨덴 존슨그룹 입사
<> 75년 미국 샌드빅 사장
<> 88년 ABB 최고경영자(CEO)
<> 96년 ABB 이사회 회장
<> 96년 최고벤치마킹대상 최우수 경영자상 수상(한국능률협회)
<> 97년 스웨덴 AB투자사 이사회 의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