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권대통령과 정보정치 .. 이주향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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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 수원대 교수 / 철학 >
야당 원내총무가 고소됐다.
국가정보원은 도청 및 불법감청 의혹과 관련, 국정원내 기구와 조직내용을
언급한 야당 원내총무를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누구말이 맞는 걸까.
국정원의 조직과 인원 등 고도의 국가기밀을 누설,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해를 가했다는 국정원의 말이 맞는가.
사생활 침해와 통신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투쟁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맞는가.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 했는가.
왜 우리는 절벽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권교체의 정신이 뭐였는가부터.
무엇 때문에 50년만에 맞는 최초의 정권교체라고 들떴었는가부터.
그것은 낡은 틀이 교체될 거라고 하는 기대였다.
우리를 주눅들게 했던 그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 낡은 틀에는 정보정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정보정치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다.
DJ도 몰랐나보다.
김대통령은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국민이 안심하고 전화를 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다"며 "불법적인 도청이나 감청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대통령 말의 위력일까.
정보통신부는 "통신감청 등이 법절차에 따라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경찰청은 "통신을 감청할 때나 이용자 정보를 요구할 때는 법절차를 지키겠
다"고 밝혔다.
그것은 불법적으로 통신을 도청했거나 감청했고 법절차를 무시하고 이용자
정보요구를 해왔다는 기막힌 고백이었다.
정보사회란 정보가 힘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한 사회다.
정보사회의 정부는 사설 도청을 엄격히 단속해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다.
정보사회 아닌가!
그런 정부가 감청의 주체였다면?
절차를 밝히지 않고 정보를 요구할 정도로 "정보"의 중요성에 무지한
정보기관의 장이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정보기관의 그런 허무맹랑한 요구에 거리낌 없이 개인의 정보를 내준
기관의 무책임한 책임자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정보사회의 시민의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사회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
비밀경찰 게슈타포 KGB가 파멸의 예감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던 전체주의
적 독재의 암울한 상징이었다면 정보사회의 게슈타포는 도청이고 감청이다.
민주주의에서 사생활의 보호는 모든 생활에,모든 자유에 기본이다.
때론 감추고 싶은 얘기가 있고 때로는 진실하지 못한 허위가 있어도 사생활
이 보호돼야 삶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질 수 있는 법이다.
모르는 사이에 사생활을 엿보는 이가 있어 불안하고 불쾌한데 누구를 믿고
무엇을 누리고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단 말인가.
검찰총장마저도 도감청을 막는 비화기를 설치해놓고 사는 사회라면 그
민주주의는 무늬만 민주주의다.
올들어 8월까지 실시된 계좌추적 건수가 모두 12만8천7백83건이데 그 중에
90%가 영장없이 실시된 것이라고 한다.
90%가 영장없이 계좌를 추적해 왔다면 그것은 권력이 자의로 남의 집 장농
이나 다름없는 계좌를 언제든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옛날에 남의 집 장농을 수시로 뒤지는 권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폭정이
아니었을까.
맘만 먹으면 당신의 전화를 엿듣고 있고 당신의 계좌를 뒤질 수 있는 권력이
라면 그 민주주의는 공허한 것이고 불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바로 도청이 핵심이 된 사건이었다.
도청을 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 사건은 사생활보호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고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일러준 민주적 사건이었다.
뒤늦게 정부는 "안심하고 통화하세요"란 카피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감청을
허용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온갖 일간신문에 광고를 해댔는데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1년전의 광고 내용과 달라진 것은 장관들 이름뿐이었다고 지적한
한 여당의원의 지적이 가슴 아프다.
그 엄격한 절차란 것도 어떤 것일까.
나는 일본을 좋아할 수 없지만 일본만 해도 자기국민에 대해 감청을 허용한
건수는 역사상 4건뿐이었다.
그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정보기관이 우리 법원에 신청한 긴급감청 건수는
98년만해도 1천38건이었다고 한다.
한국엔 범인들만이 사는 나라인가.
엄격한 절차에 따라 허용하고 있다는 감청도 정말 엄격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DJ에게 감청하는 정권의 수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해서 되겠는가.
정권교체 왜 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 ja1405@chollian.net >
-----------------------------------------------------------------------
<> 필자 약력
=<>이화여대 철학박사
<>이화여대 강사
<>서울방송 라디오칼럼 진행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
야당 원내총무가 고소됐다.
국가정보원은 도청 및 불법감청 의혹과 관련, 국정원내 기구와 조직내용을
언급한 야당 원내총무를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누구말이 맞는 걸까.
국정원의 조직과 인원 등 고도의 국가기밀을 누설,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해를 가했다는 국정원의 말이 맞는가.
사생활 침해와 통신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투쟁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맞는가.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 했는가.
왜 우리는 절벽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권교체의 정신이 뭐였는가부터.
무엇 때문에 50년만에 맞는 최초의 정권교체라고 들떴었는가부터.
그것은 낡은 틀이 교체될 거라고 하는 기대였다.
우리를 주눅들게 했던 그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 낡은 틀에는 정보정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정보정치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다.
DJ도 몰랐나보다.
김대통령은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국민이 안심하고 전화를 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있다"며 "불법적인 도청이나 감청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대통령 말의 위력일까.
정보통신부는 "통신감청 등이 법절차에 따라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경찰청은 "통신을 감청할 때나 이용자 정보를 요구할 때는 법절차를 지키겠
다"고 밝혔다.
그것은 불법적으로 통신을 도청했거나 감청했고 법절차를 무시하고 이용자
정보요구를 해왔다는 기막힌 고백이었다.
정보사회란 정보가 힘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한 사회다.
정보사회의 정부는 사설 도청을 엄격히 단속해서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해
줄 의무가 있다.
정보사회 아닌가!
그런 정부가 감청의 주체였다면?
절차를 밝히지 않고 정보를 요구할 정도로 "정보"의 중요성에 무지한
정보기관의 장이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
정보기관의 그런 허무맹랑한 요구에 거리낌 없이 개인의 정보를 내준
기관의 무책임한 책임자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정보사회의 시민의 자격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사회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
비밀경찰 게슈타포 KGB가 파멸의 예감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던 전체주의
적 독재의 암울한 상징이었다면 정보사회의 게슈타포는 도청이고 감청이다.
민주주의에서 사생활의 보호는 모든 생활에,모든 자유에 기본이다.
때론 감추고 싶은 얘기가 있고 때로는 진실하지 못한 허위가 있어도 사생활
이 보호돼야 삶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질 수 있는 법이다.
모르는 사이에 사생활을 엿보는 이가 있어 불안하고 불쾌한데 누구를 믿고
무엇을 누리고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단 말인가.
검찰총장마저도 도감청을 막는 비화기를 설치해놓고 사는 사회라면 그
민주주의는 무늬만 민주주의다.
올들어 8월까지 실시된 계좌추적 건수가 모두 12만8천7백83건이데 그 중에
90%가 영장없이 실시된 것이라고 한다.
90%가 영장없이 계좌를 추적해 왔다면 그것은 권력이 자의로 남의 집 장농
이나 다름없는 계좌를 언제든지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일 옛날에 남의 집 장농을 수시로 뒤지는 권력이 있었다면 그것은 폭정이
아니었을까.
맘만 먹으면 당신의 전화를 엿듣고 있고 당신의 계좌를 뒤질 수 있는 권력이
라면 그 민주주의는 공허한 것이고 불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바로 도청이 핵심이 된 사건이었다.
도청을 한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 사건은 사생활보호가 민주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고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일러준 민주적 사건이었다.
뒤늦게 정부는 "안심하고 통화하세요"란 카피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감청을
허용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온갖 일간신문에 광고를 해댔는데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1년전의 광고 내용과 달라진 것은 장관들 이름뿐이었다고 지적한
한 여당의원의 지적이 가슴 아프다.
그 엄격한 절차란 것도 어떤 것일까.
나는 일본을 좋아할 수 없지만 일본만 해도 자기국민에 대해 감청을 허용한
건수는 역사상 4건뿐이었다.
그 엄격한 절차에 따라 정보기관이 우리 법원에 신청한 긴급감청 건수는
98년만해도 1천38건이었다고 한다.
한국엔 범인들만이 사는 나라인가.
엄격한 절차에 따라 허용하고 있다는 감청도 정말 엄격한 절차에 따른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DJ에게 감청하는 정권의 수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해서 되겠는가.
정권교체 왜 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 ja1405@chollian.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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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이화여대 철학박사
<>이화여대 강사
<>서울방송 라디오칼럼 진행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