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정보통신분야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가다.

휴대폰 보급률은 국민 1백명당 62대로 단연 세계 1위다.

전자메일 사용자 수도 인구대비 가장 높은 비율을 자랑한다.

핀란드가 이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정보통신업계의 강자 "노키아"가 핀란드 기업이기 때문이다.

굳이 핀란드와 노키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글로벌 경쟁시대의 국가경쟁력
은 곧 기업경쟁력이다.

스위스 IMD(국제경영대학원)가 국가경쟁력 순위를 매길때도 "기업" 부문은
주요 평가기준이다.

그렇다면 기업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런던비즈니스 스쿨의 수만트라 고시알 교수(경영전략)는 "경영자의 능력이
곧 기업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기업이란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의 중간에 위치한 블랙박스다.

즉 인력 자금 기술 등의 "자원(resource)"을 토대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게 기업이다.

문제는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조직"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다는 것.

메이저 리거 "박찬호"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엔 박찬호를 훈련시킨
"메이저리그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다.

CEO의 고유한 임무는 이렇듯 자원을 "조직"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탁월한 CEO가 기업의 가치를 올려 놓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시스코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짧은 기간내에 시스코의
시장가치를 1천억달러로 끌어올림으로써 주목받는 CEO로 부상했다.

코카콜라의 주이비에타 회장도 취임전 펩시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코카콜라
의 시장가치를 취임이후 30배 격차로 벌려 놓았다.

유능한 CEO는 곧 기업의 자산인 셈이다.

그렇다면 21세기 CEO의 역할은 무엇일까.

기업의 현재 전략을 "결정"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박철순 교수는 "경영자는 단순히 기업의 관리자가 아니며
기업 고유의 혁신적 가치를 기업에 불어넣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압축성장의 시기 대부분의 국내 CEO들은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렀다.

기업을 혁신해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는 기업에서 경영간부가 성장하는 경로를 보더라도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대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은 "러시아 인형"과 같았다.

CEO가 가장 큰 인형이었고, 다른 중간경영자는 큰 인형의 복사판인 작은
인형이었다.

"전략결정자"로서의 CEO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경영자였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CEO들의 고민은 1세대 경영자로서 2세대적인 조직을
갖고 3세대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이다.

기업의 경쟁력 측면에서도 CEO의 역할은 한정돼 있었다.

지난 80년대까지 국내기업들은 사업의 "구조적 매력도"를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해 왔다.

당시 시장상황은 판매자 위주의 시장(Seller"s Market)이었다.

경제성장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공급은 만성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기업의 경쟁력은 "누가 빨리, 보다 많이" 생산하느냐에 따라 결정
됐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쟁력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자금력과 관리력,
정부와의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등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이같은 기업환경은 급변했다.

어느 순간 찾아온 공급과잉에다 경쟁의 심화로 각 사업별 구조적 매력도는
크게 약화됐다.

마케팅과 기술이 강조되는 반면 전통적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강점이었던
자금동원 능력과 중앙집권적 기업구조는 상당 부분 그 가치를 상실했다.

"대기업 위기"의 본질은 이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 CEO의 역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환경변화를 재빨리 감지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CEO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자 성장의 원천이다.

CEO야말로 기업의 가치를 높여 사회적인 부를 만드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우석 소장은 "탁월한 CEO는 기업의 자산인 동시에 국가의
자산"이라며 "초우량 기업들이 많을수록 강한 국가"라고 강조한다.

< 이의철 기자 ec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