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정책은 재벌문제 때문에 왜곡돼 있는 것들이 많다.

재벌을 규제하거나 재벌에 대한 특혜시비를 피하려다보니 나타나는 현상
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정책을 입안할 때 최우선 고려사항이 재벌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관가의 풍토를 전해준다.

문제는 이로인해 국가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잦다는 점이다.

정책결정 과정이 지연될 뿐 아니라 결과물로 나온 정책도 시장원리에
동떨어져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기업 민영화만해도 재벌에 대한 특혜시비를 우려해 이런 저런 조건을
달다보니 제대로 될리가 없다.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민자유치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작년초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M&A를 전면 허용하면서 출자총액제한
제를 폐지했었다.

외국기업과의 역차별이 우려된다는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대기업들의 내부지분율이 높아지자 1년여만에 다시 부활시켰다.

이에 대해서는 여권인 국민회의에서도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국민회의 박정훈 의원은 최근 재경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출자총액제한과
계열 금융기관에 대한 의결권 제한으로 국내기업을 외국기업보다 역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창순 전 부총리도 "외국 어느나라에도 없는 출자총액제한제 등과 같은
규제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한다.

출자총액제한은 중복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공정거래법상 30대 그룹은 올 회계년도부터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호출자나 순환출자에 따른 거품이 드러나면 자연스레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98년초 폐지한 제도를 부활한 것은 이중의 규제라는 지적이다.

지주회사의 설립요건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의 문제를 출자총액제한으로 풀려는 반면 재경부
는 지주회사 설립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지주회사 설립요건은 부채비율을 1백%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이를 감수하면서 지주회사를 설립할 기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주회사야말로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분산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지름길"(연강흠 연세대 교수)인데도 재벌에 대한 특혜시비가 일까봐 일부러
먼길을 돌아가는 꼴이다.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도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
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정책이 재벌의 개혁을 압박하는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기획본부장)는 것이다.

경쟁제한성이 입증되거나 탈세를 목적으로 하는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공정위
국세청이 엄격히 규제해야지만 단순히 시장가격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하는 정책은 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제도화하려는 기업지배구조 관련 기준도 지나치게 투명성에만 집착해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외이사 비율을 50% 이상으로 의무화하고 감사위원회에 업무 타당성 감사를
허용하는게 대표적인 사례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영효율을 도외시한채 경영책임만
강화하는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국내 기업뿐 아니라 외국투자기업
의 경영애로로 작용해 외자유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호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도 "최적의 지배구조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인데도 개혁차원에서 획일적 모델을 강요하는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제도상의 문제점들에 대해 대기업의 한 임원은 "정부의 재벌 개혁이
마무리되면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은 쉽게 발견할 수 있겠지만 성장잠재력
이 크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몇개나 나올지는 불투명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