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전자회사 필립스(Philips)는 90년 한해에만 23억달러의 적자를
내는 등 90년대초에 크게 고전하면서 한때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립스는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영입했다.

이렇게 해서 96년10월 필립스 사장이 된 사람이 바로 미 소비재회사 사라 리
(Sara Lee) 출신의 코르 분스트라(Cor Boonstra)다.

분스트라 사장은 매우 과감하게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했다.

가정용 비디오, 그룬디히 TV같은 만년 적자사업을 매각하고 음악소프트,
이동전화기제조업 등 비핵심사업 분야에서도 철수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필립스는 올 상반기까지 40개의 사업을 처분하고
약 9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분스트라 사장은 또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는 뜻에서 본사를 아인트호벤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옮겼으며 필립스의 상표가치를 올리기 위해 광고 및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다.

이와함께 핵심사업 강화의 일환으로 99년5월 미국의 반도체회사 VLSI
테크놀로지를 10억4천만달러에 인수했다.

이렇게 애쓴 결과 필립스의 경영실적은 최근 들어 나아지고 있으며 주가도
대체로 상승 추세다.

그렇지만 필립스의 시장가치는 아직 자산가치의 75%에 지나지 않는다.

그 까닭은 투자자들이 필립스를 여전히 지나치게 몸이 무거운 기업집단
(conglomerate)으로 보기 때문이다.

비록 11개의 사업부가 8개로, 그리고 1백20여개의 사업이 80개로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구조조정의 여지는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명사업부와 의료기기사업부가 현재 많은 이익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을 필립스의 핵심사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이들 사업부는 짐이 될 것이다.

반면 가전부문과 산업전자부문, 그리고 반도체 등의 몇몇 부품제조부문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으며 이들 사업은 앞으로 더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견해다.

필립스에 더 어려운 문제는 기초연구에 관한 것이다.

기초연구는 장기적으로 필립스에 큰 수익을 가져다 줄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구에는 한가지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연구의 궁극적 열매를 자기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가 거둘 가능성
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필립스는 과거와는 달리 연구부서로 하여금
연구개발 예산의 75%를 관련사업부와의 계약에 의해 조달하게 하고 있다.

시장의 필요에 따라 연구를 하게 하려는 정책인 것이다.

기초연구의 또 하나의 문제는 그 혜택을 측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제 유럽에서도 회사의 주식가치가 문제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활동은 이익 증대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분위기로 말미암아 필립스도 앞으로는 AT&T와 제록스의 경험처럼
기초연구의 상당부분을 대학에 맡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