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핵심은 경쟁력 있는 사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주력 사업이나 중소기업형 사업들을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구본무 LG 회장이 지난 9월 7일 임원 세미나에서 구조조정 성과에 대해
내린 평가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업에서 연말까지 철수하지 않을 경우 경영진의 책임
을 묻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구 회장의 발언은 대기업의 변신노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 변신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하는 카멜레온식 변화가 아니다.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을 위한 자발적인 변화다.

이재우 부산대 교수는 "그룹 경영의 환경변화로 대기업들은 변화를 좇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시장이 개방되고 경영권위협이 갈수록 증대되는 상황에서 예전의 경영
시스템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또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강화돼 계열사간 자원 이동도 여의치
않다.

그만큼 종래의 그룹 경영체제에 따르는 불이익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개혁에 대해서는 불만도 없지 않다.

"개혁 교과서"의 진도가 너무 빠르고 내용도 지나치게 자주 개편된다는
불만이다.

5대 그룹은 지난해 1월 정재계 간담회에서 기업구조개혁 5대 원칙에 합의한
이후 이를 개혁의 교과서로 삼아 왔다.

그런데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플러스 5원칙"을 요구했다.

5대 그룹의 한 구조조정본부장은 "5대원칙중 하나인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하다보니 내부지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런 사정은 배려하지 않고 출자총액제한 제도라는 새 교과서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부지분 문제는 지주회사 설립요건이 현실화되면 당장이라도 풀수 있다는게
재계 입장이다.

이런 와중에도 5대 그룹의 개혁은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8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5대 그룹은 부채비율을 당초 계획보다 초과 감축하는 등 전체적
으로 구조조정계획을 순조롭게 이행하고 있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
했다.

일례로 지난 6월말 현재 5대 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3백2%로 작년말보다
86%포인트나 낮아졌다.

삼성의 경우 1백92.5%로 이미 2백% 밑으로 떨어졌다.

외자유치 상호지급보증해소 분사화 지배구조개선 등도 계획대로 충실히
이행중이다.

정부가 선단식 경영의 "사령실"로 여기는 사장단회의 및 운영위원회 등도
폐지됐다.

그 만큼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체제가 강화된 것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47개 삼성 계열사중 그룹차원의 지원을 기대
하는 계열사는 한 군데도 없다"고 강조했다.

핵심사업에 대한 역량집중도 가시화되고 있다.

현대 주력사인 자동차 전자 중공업 건설 등 4개사의 올해 매출비중은
47.8%로 98년(29.9%)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LG도 화학 정유 전자가 전체 그룹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커졌다.

대우는 (주)대우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주력 3사의 매출이 76.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SK도 SK(주) SK상사 SK텔레콤 등 주력사의
매출이 60%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주력사의 매출 비중이 10~20%가량 높아진 셈이다.

이에대해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3~4개 주력사의 매출 비중이
높으면 다각화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5대그룹의 이같은 변신노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인색한 편이다.

이에대해 김석중 전경련 조사1본부장은 "대기업의 구조개혁은 공공 및
노동 부문에 비하면 두드러진 편"이라며 "외부의 평가와 관계없이 앞으로
"구조조정의 일상화"가 재계의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