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퇴치된 것으로 믿어졌던 전염병이 "부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요즘 결핵이 무서운 기세로 번지고 있고 한국에서도 사라졌던
말라리아와 공수병 등의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전염병도 새로 등장,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와 에볼라에 이어 제3의 아프리카산 바이러스인
"원숭이두창(monkeypox)"이 인간에게 전염되면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미 알려져 있던 세균들도 항생제에 대한 갑옷으로 무장, "슈퍼박테리아"
로 모습을 바꾸고 인간을 다시 공격해 오고 있다.

지난 29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한 이후 무력해졌던 포도상구균 등
박테리아들이 이제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무서운 균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처럼 퇴치된 전염병이 다시 번지고 신종 전염병이 등장하며 내성균이
퍼지는 것은 기상변화, 국가교류증대, 미생물의 적응변화, 공중위생 결핍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전염병의 부활 =결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미국에서 창궐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의 경우 결핵균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핵균에 노출된 1백명중 30명은 치료약이 없어 목숨을 운명에 맡겨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구소련지역에 재등장한 디프테리아도 기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며 진군의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말라리아와 공수병이 다시 등장했다.

중국얼룩무늬날개모기에 물렸을때 전염되는 말라리아는 한반도에서
사라진지 12년만인 92년 재출현한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말라리아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온난화 때문이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중국얼룩무늬날개모기의 경우 섭씨 12도에서 발육기간이
22.8일인데 반해 29도에서는 3분의 1 가량인 7.7일로 급격히 줄어든다.

무더운 날이 계속될 경우 이 모기의 번식속도가 빨라져 말라리아도 그만큼
빠르게 퍼지게 된다.

고온현상이 계속됐던 지난해의 경우 97년의 두배가 넘는 3천9백32명의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했다.

공수병도 지난 84년이후 15년만에 다시 나타났다.

지난 5월 경기도 파주에서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린 사람이 공수병에
걸렸다.

2종 법정전염병인 공수병은 잠복기가 3~6주로 환자는 림프선이 붓고 호흡
곤란과 함께 물을 보기만 해도 공포감을 느끼다 바이러스가 뇌에 퍼지면
대부분 사망한다.

<> 신종 전염병 데뷔 =제3의 아프리카산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원숭이두창은
아직 인체내 감염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자칫 불치의 역병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신종 전염병이다.

지난 56년 원숭이 몸에서 발견된 원숭이두창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되면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환자들은 고열과 발진에 시달리면서 피부에 부스럼이 생긴다.

이어 폐출혈이 생겨 사망한다.

최근 3년간 세계적으로 5백여명의 환자가 발생해 5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85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에이즈 감염자도 최근 급증, 1천명을
넘어섰다.

올들어 9월말까지 추가로 확인된 에이즈 감염자는 1백38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42.3% 증가했다.

85년이후 총 감염자는 9월말 현재 1천14명.

실제 감염자는 확인된 감염자의 5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등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속도는 과거 어느때보다 맹렬하다.

<> 슈퍼박테리아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지녀 이제 약으로 잘 치료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세계적인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말 일본 도쿄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입원중이던 환자 13명이 갑자기
38도 이상의 고열증세를 보이다 5명이 숨졌다.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대부분인 이들 환자의 분비물에서는 내성을 지난
세라티아균이 발견됐다.

세라티아균은 장에 주로 사는 구균으로 10여년전만 해도 무해한 균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항생제의 남용으로 내성이 생겨 위협적인 존재로 바뀐 것이다.

또 일본 가노현의 종합병원에서 7월초 4명의 환자가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감염증을 일으켰으며 이중 한명이 숨졌다.

국내에서도 내성을 지닌 황색포도상구균(VRSA)이 40대 암환자에서 발견됐다.

이 균은 가장 강력한 항생제로 알려진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

지구상에 이 균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는 없다는 얘기다.

즉 일단 감염되면 정상인도 손한번 못쓰고 사망할 수 있는 슈퍼박테리아다.

지난 29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했을 때 대부분의 구균은 페니실린으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70년간 인간들이 항생제를 마구 써오면서 이제 기존의 어떤
약에도 듣지 않는 강력한 균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내성균을 치료할 수 있는 차세대 항생제가 나오기 전까지 슈퍼박테리아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 김도경 기자 infof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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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테리아의 내성 ]

박테리아는 어떻게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박테리아의 세포 핵내에 존재하는 원형의 작은
유전자인 플라스미드(Plasmid)에 있다.

플라스미드는 박테리아의 세포를 구성하는 정보가 담겨있는 유전자와는
별도로 존재하며 다양한 기능을 한다.

예들 들어 테르라사이클린이란 항생제에 노출됐다 살아남은 박테리아의
플라스미드에는 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담기게 된다.

이렇게 플라스미드에 담긴 항생제 내성은 박테리아가 분열해 생기는 차세대
박테리아에도 그대로 담긴다.

즉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은 더이상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플라스미드는 동종의 박테리아가 서로 주고받는 유전자이기도 하다.

박테리아는 때때로 근처의 박테리아와 작은 관을 연결해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넘겨준다.

이에따라 특정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동족에게 플라스미드
를 넘겨주면 이를 받는 균도 곧바로 내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스미드에 실려있는 항생제 무력화 "전략"은 무엇일까.

특정 항생제를 세포밖으로 방출시키거나 분해 또는 비활성화시키는 세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항생제가 작용을 하려면 먼저 박테리아의 세포내로 침투해야 한다.

박테리아는 항생제가 세포내로 들어오면 이를 곧바로 밖으로 방출시키는
펌프를 만들어 낸다.

이 펌프의 "설계도"를 플라스미드에 보관하는 것이다.

항생제가 세포내로 들어와 머무르더라도 이를 분해해버리면 효과가
없어진다.

박테리아는 세포내로 침투한 항생제를 곧바로 분해하는 방법으로 내성을
얻기도 한다.

바로 이 "분해기술"이 플라스미드에 저장된다.

비슷한 것으로 항생제의 특정부위에 달라붙는 단백질을 만들어내 항생제가
효과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항생제에 달라붙는 단백질의 유전정보도 플라스미드에 실린다.

< 김도경 기자 infof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5일자 ).